진로와 꿈 직업인 인터뷰

[24호] 그녀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미술감독 이민아

인터뷰/글 진주영

사진 씨네21 최성열

제목 그녀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부제 영화<권법>의 미술감독 이민아

영화 열한시, 스카우트, 소년은 울지 않는다, 웰컴 투 동막골, 태극기 휘날리며, 라이터를 켜라, 서프라이즈. 아이고. 많다. 많아.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래, 맞아! 바로 오늘의 주인공 이민아 미술감독님의 손길이 닿은 영화들이지! 으음? 그런데 미술감독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MODU가 미리 만나고 왔지롱~ 자, 고고싱!

영화 미술감독!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미술감독이라고 하면 흔히 미술 작업만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요즘은 프로덕션 디자이너라고 해서 좀 더 많은 영역을 다루고 있어요. 그때그때 주어진 미술 작업만 하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 초기 단계부터 참여해서 연출가, 촬영감독과 함께 여러 의견을 나눠요. 이 과정을 통해서 영화의 큰 그림, 즉 세계관이 구성되는데요. 이를 바탕으로 여러 스태프들이 영화를 만드는 거죠.

시나리오 초기 단계부터 참여한다니 신기한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우선 영화작업에서 큰 중심축은 연출자, 촬영감독, 프로덕션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연출자가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면 이 세 사람이 모여서 시나리오를 구체적으로 설정해나가는 거죠. 예를 들면 A장면은 B장소에서 C조명의 밝기로 찍으면 좋겠다, D 캐릭터는 E색의 옷을 입고 F스타일의 머리를 하면 좋겠다 등등 의견을 제시하는 거죠.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미술적인 부분만 제시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이 장면에서 왜 이런 느낌, 이런 분위기를 내야 하는지를 말할 수 있어야 하죠. 이런 이유로 미술적 감각은 물론이고 시나리오 이해력도 필수적인 직업이에요.

와, 생각보다 영화에 깊숙이 관여하는 직업이었네요!

물론 얼마나 깊이 참여하는지는 영화나 사람마다 차이는 있어요. 앞서 말한 과정 없이 연출자가 부탁하는 대로 미술 작업을 진행하기도 해요. 그런데 요즘은 프로덕션 디자인이라는 학문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거든요. 그래서 예전에 비해 미술감독의 영역이 커지고 있는 거예요.

점점 흥미진진하네요. 어릴 때부터 이런 쪽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나요?

일단 아버지께서 건축 일을 하셔서 영향을 받은 것도 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집 그리는 걸 되게 좋아했거든요.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이 공간에서는 이런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죠. 자연스럽게 건축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공부해보니까 전 이과 체질은 아니더라고요. 문과에서 이런 흥미를 살릴 수 있는 일은 미술 쪽이니까 그쪽으로 가야겠다 싶었죠.

앗, 그렇다면 혹시 전공이 디자인 관련?

아쉽지만 아니에요. 미술만 하기보다 건축과 미술을 접목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거든요. 관련된 학과로는 장식 미술학과, 인테리어 학과 등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것보다도 이야기 있는 공간, 그런 그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에 무대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알게 됐고, 무대미술학과가 있다는 정보도 얻게 됐어요. 그래서 지원하게 됐는데 딱 합격한 거죠. 입학해서 공부해보니 제 적성에도 잘 맞았고요.

무대미술학과! 어떤 공부를 하는 곳인지 궁금한데요?

우리가 흔히 보는 공연장의 무대를 공연 콘셉트에 맞게 연출하는 법을 배우는 과에요. 주로 공연이나 연극을 중점적으로 배우는 데요. 무대라는 게 그 희곡이 담고 있는 것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래서 미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희곡에 대한 분석이 필수적이에요. 연출가나 작가들이 나타내고자 한 의도를 파악해야 하니까요. 덕분에 인문학 공부도 많이 했죠. 예술에 대한 나만의 철학, 미학적 소양도 기르게 되고요. 굉장히 다양하고 넓은 분야를 배울 수 있어 좋았어요.

그렇다면 여러 분야 중에서도 영화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연이나 연극도 좋아해요. 그런데 ‘이 일을 평생 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서 보자면 아니었어요. 저한테는 영화가 더 가슴 뛰는 일이었거든요. 학교 다니면서 연극작업도 하고, 오페라 조명 감독님 일을 도운 적도 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랑 단편이나 독립 영화를 만들 때가 가장 신 나고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영화 일을 하게 된 거예요. 게다가 연극을 먼저 배운 것이 영화작업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보다 깊이 있게 영화를 다루게 되었거든요.

꽤 일찍 진로를 찾은 편인 것 같은데요.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고민이 없진 않았죠.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단편, 독립영화를 시작해서 4학년 때는 상업영화를 시작했어요.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시작한 편이죠. 그 후로 쉬지 않고 계속 일하면서 중간에 심하게 고민한 적이 있어요. 내가 지금 가는 길이 맞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누구나 그렇잖아요. 계속해서 작품을 할 것인가, 유학 혹은 대학원에 가서 더 공부할 것인가 계속 고민하던 차에 미술감독으로 데뷔하게 됐어요.

그때가 29살이었다고요? 꽤 이른 나이인 것 같아요!

일반적으로는 30대 중반쯤에 미술감독이 되죠. 제가 모시고 있던 미술감독님이 유학을 가셔서 어쩔 수 없이 데뷔하게 된 것도 있어요. 그래서 더 고민이 많았죠. 어린 나이에 견문도 부족한 것 같고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들에 비해 관련 프로그램을 다루는 기술도 모자란 것 같고요. 그러다가 마침 프로덕션 디자인 대학원이 생겨서 진학하게 됐어요.

치열한 고민 끝에 지금까지도 이 일을 놓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요?

저한테 정말 중요한 작품이 있어요. 바로 <권법>이라는 영화인데요. 2008년부터 지금까지 작업하고 있어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박광현 감독님이 함께 하자고 제안하셨는데요. 이게 제 모든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일을 하면 할수록 더 상상력을 발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상업영화는 그게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영화 <권법>은 SF 판타지 장르니까 그런 부분이 충족될 것 같더라고요.

2008년부터 지금까지 준비 중인 영화라니! 절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은데요.

중간에 여러 번 영화가 중단됐었어요. 예산 문제도 있었고, SF 판타지 장르는 아무래도 다른 영화에 비해 어려운 점이 많죠. 그래도 끝까지 하고 싶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도 주변 사람들이 많이 말렸는데요.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제 인생 걸림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하지만 제 생각은 완전 달라요. 이 영화를 5년 동안 준비해서 <열한시>라는 영화도 할 수 있었거든요. 영화 <열한시>도 SF 판타지 요소가 있는 영화잖아요. 5년 동안 <권법>을 준비했다는 이유로 일하게 됐으니까요. <권법>을 준비한 시간이 결국은 다 저한테 돌아온 거죠. 이렇게 되려고 그랬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영화를 만드는 일은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업무 강도도 만만치 않다고요?

디자인도 하고, 직접 만들기도 하고, 현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힘들긴 힘들죠. 그렇지만 저는 책상에 앉아서 디자인하는 게 더 힘들 것 같아요. 저한테는 이게 맞는 일인 거죠. 디자인하다가 지치면 현장 가서 다시 에너지도 얻고요. 다양한 일을 하는 만큼 몸은 힘들지만 정서적으로는 더 충족되는 거죠. 매 순간순간이 새로우니까 항상 다른 마음가짐으로 일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이 직업을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고요. 질릴 새가 없죠.

정말 매력적인 직업이네요. 지금까지 일하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제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보는 순간이 정말 감격스러워요. 모든 영화가 다 그렇기 때문에 한 영화, 한 순간을 꼽지는 못할 것 같아요. 매 장소, 촬영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어떤 마음으로 임했는지 떠올라서 혼자 울컥울컥 하거든요. 첫 영화였던 <라이터를 켜라> 때는 미술팀 안에서 기차 담당이었어요. 기차 만드는 게 창의적인 작업은 아니지만 이리저리 다니면서 직접 기차를 만든 거잖아요. 그걸 딱 극장에서 보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한 스무 번은 넘게 본 것 같아요.

저도 잡지에 제 이름이 실리면 그렇게 좋더라고요. 감독님의 현재 목표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가 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런 환경을 조성하는 데 일조하는 사람이 되고 싶죠. 우리나라에 있는 정말 좋은 콘텐츠들이 세상 빛을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깝기도 해요. 그래서 어떤 글이든지 시각화 작업으로 구현해주는 회사도 차리고, 중국과 협력해서 더 넓은 영화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감독님처럼 멋진 미술감독이 되고 싶은 친구들은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까요?

무대미술이나 프로덕션 디자인을 무조건 전공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대신 어떤 전공을 하든지 이야기 있는 책을 많이 읽고 인문학 공부도 했으면 좋겠어요. 영화라는 건 우리가 사는 시대뿐만 아니라 과거나 미래까지 다 담잖아요. 그런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해야 시나리오를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더 좋은 영화미술이 나올 거고요. 또 문화의 흐름도 놓치지 않았으면 해요. 지금 사람들이 열광하는 게 무엇인지도 알아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많이 보고 들어야겠죠. 그러다 보면 자기만의 감각, 색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예요. 이것도 정말 중요한 거거든요. 한 마디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밝고 부지런히 다녀야 해요.

마지막으로 진로를 고민하는 MODU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사람마다 주어진 환경은 다르겠죠. 저 같은 경우는 어릴 때부터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을 거예요. 그래도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면 해요. 그런 일을 해야 건강하게 스트레스 없이 오래오래 일할 수 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자기 길을 빨리 정해서 쭉 직진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야 중간에 승부수를 띄울 수도 있고 여유도 생기거든요. 제가 영화 <권법>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죠. 본격적으로 취업하기 전에 내가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많이 고민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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