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24호] 애틀랜타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윤혜영 선수

인터뷰/글 이진혁

사진 씨네21 오계옥

국가대표, 제 2의 금빛 인생을 달리다

애틀랜타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윤혜영 선수

때는 1987년, 한 시골 초등학교의 여학생은 등교하다가 ‘슉’하는 소리를 듣게 돼. 그 초등학교의 양궁부가 화살을 쏘는 소리였어. 여학생은 그 소리에 푹 빠졌지. 자기도 화살로 노란 과녁을 맞혀보고 싶다고 생각했어. 11살 소녀의 양궁 인생이 이때부터 시작된 거야. 그 이후 소녀는 양궁 국가대표가 되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게 돼. B1A4와 포미닛 권소현의 양궁 선생님! 아육대의 해설위원! 이번 달 MODU가 만난 롤모델! 바로 윤혜영 선수야.

 

윤혜영 선수를 안산에 있는 한 양궁 연습장에서 만났어. 조금 일찍 도착해 연습장 안을 둘러봤는데 많은 학생들이 방학인데도 훈련에 열심이었어.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저마다의 꿈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좋아 보였어. 조금 기다리니 윤혜영 선수가 여덟 살 아들의 손을 잡고 도착했어. 올해 초등학생이 된다는 아들 걱정부터 하는 윤혜영 선수, 아니 윤혜영 엄마. 그거 아니? 윤혜영 선수의 꿈은 사실 세계적인 선수도 아니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도 아니고 ‘좋은 아내, 좋은 엄마’가 되는 거였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자기의 소박한 꿈을 이룬 이야기 궁금하지 않아? 지금부터 윤혜영 선수와 나눈 이야기를 들려줄게.

 

Q : 양궁은 언제 시작하셨나요?

 

A : 충남 보령에서 초등학교에 다녔어요. 시골학교였는데 양궁부가 있었죠. 사실 처음부터 양궁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4학년이 되던 해, 등교를 하던 어느 날이었어요. 복도를 따라 걷는데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어요. 원래는 신경도 안 쓰고 그냥 지나치는 날이 많았는데 말이죠. 그날따라 과녁에 꽂히는 소리가 참 통쾌하고 멋있어 보였어요. 그 복도를 끝까지 걸었을 때 ‘양궁을 해야지’하고 생각했죠. 마침 그때 담임선생님이 양궁부 감독이었어요. 선생님이 제 팔을 보시더니 양궁을 하기 좋은 팔이라고 하시더군요. 팔이 휘어 있으면 양궁을 시작할 수조차 없는데 저는 정말 팔이 곧았거든요. 그 말에 힘이 나서 처음부터 양궁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Q : 국가대표에 적합한 몸을 타고 나신 거네요(웃음). 어린 나이에 양궁을 시작해서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아요.

 

A : 양궁부가 있는 학교로 진학해야 했기 때문에 중학교 고등학교를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다녔어요. 부모님과도 떨어져 지냈죠. 할머니와 둘이서 살게 되었는데 힘든 점이 많았어요. 어린 나이에 부모 떨어져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부모님은 많은 힘이 되어주셨어요. 특히 아버지께서 저를 많이 지지해주셨어요. 사실 어머니는 제가 떨어져 혼자 학교 다니는 걸 많이 반대하셨는데, 아버지가 “꿈을 위해서라면 가라”고 말씀하셨죠. 정말 힘이 되는 한 마디였어요.

그런데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가 중2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어요. 그때는 정말 눈앞이 캄캄했죠. 온갖 걱정이 되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그때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인 것 같아요. 저는 3남매 중 둘째였는데 특히 집안 형편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아시겠지만 운동을 하는 건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거든요. ‘지금 내가 운동할 때인가’, ‘운동 그만두고 가족들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수도 없이 생각했어요.

 

Q : 정말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A : 제가 참 복이 많은 게,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방황할 때는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다잡아 주셨어요. 저와 많은 대화도 함께 해주셨죠. 그리고 담임선생님께서 반에서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정말 바르고 성실한 친구와 짝을 지어 옆자리에 앉게 해주셨어요. 처음에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어요. 알고 보니, 그 아이를 보면서 힘을 얻으라는 뜻이었죠. 그때 말씀하시길 “더 힘든 아이도 많다. 앞으로 더 힘든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포기하지 말고 이겨낼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버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감독님, 코치님들도 많이 힘이 돼 주셨고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고마운 분들이에요.

 

Q : 윤혜영 선수의 청소년 시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떤 소녀였을지 궁금해졌어요. 학창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요. 양궁을 하면서 변한 게 있다면 무엇인가요?

 

A : 저는 정말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어요. 아마 멀리 학교로 진학을 해야 했기 때문에 주변 친구들이 자주 바뀐 탓도 있을 거예요. 원래 태어나길 내성적으로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양궁을 하며 많이 밝아졌어요. 성격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말이 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죠. 인내심도 생겼고, 무엇보다 ‘마음의 회복’이 빨라진 것 같아요. 그러니까 힘든 일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고 딛고 다시 일어나는 게 빠르다는 뜻이에요. 확실하진 않지만 이런 게 양궁 덕분이 아닐까요? (웃음) 아, 또 하나 있네요. 양궁을 하면서 승부욕이 생겼어요. 한 게임 한 게임 이기는 데 집중을 하게 되더라고요. 원래는 이기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양궁에서만큼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지면 분하고, 이기고 싶고 그랬어요. 아마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도 양궁을 좋아해서였던 것 같아요. 사실 양궁으로 계속 이겨나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쉬지 않고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결과죠. 그렇게 제가 푹 빠져서 할 수 있었으니까 양궁 선수로 오래 살 수 있었던 거겠죠.

 

 

윤혜영 선수가 양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본인의 노력도 있었지만, 주변의 많은 도움도 있었어.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 인생의 챕터마다 선생님들이 윤혜영 선수를 다잡아주고 격려해 줬다는 점이었어. 나의 일도 아니고, 또 한참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왠지 내가 그들에게 감사하게 되더라. 우리나라의 금메달리스트를 키워낸 분들이기도 하고 말이야. 선생님의 도움으로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한 이야기는 많잖아.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 박지성과 히딩크 감독 등등. 너희들에게도 그런 좋은 선생님이 곁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윤혜영 선수와의 인터뷰에서 빠질 수 없는 이야기,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어.

 

 

Q : 그렇게 양궁을 포기하지 않아서 국가대표가 되셨잖아요? 국가대표가 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 국가대표가 된 건 고3 때였어요. 사실 그때가 제 전성기였죠. (웃음) 고3 때 나간 대회에서 딱 한 번만 2등을 하고 나머지는 다 1등을 했으니까요. 그렇게 화려한 성적으로 어린 나이에 대표팀이 되었죠. 그런데 대표팀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시련이 닥치더라고요. 태릉선수촌의 혹독한 체력훈련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사실 저는 대표팀에 들어가기 전에는 체력훈련을 별로 하지 않았어요. ‘활만 잘 쏘면 되지 뭐’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태릉선수촌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는데, 운동 기구를 하나도 못 다루니까 트레이너들이 참 어이없어했어요. 혼도 많이 났죠. 거기다 저는 평발이라 달리는 걸 잘 못해요. 그런데 평발이라고 훈련에서 빠질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저도 하루 종일 달려야 했죠. 하루는 극기훈련으로 400m 트랙을 100바퀴를 뛴 적이 있는데,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달려야 해서 너무 화가 났던 게 기억나요. 반감도 생겼던 것 같고요.

 

Q : 그런 혹독한 훈련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

 

A : 그럼요. 그렇지만 사실 체력훈련을 받아서 활을 더 잘 쏘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물론 도움이 되었겠지만, 크게 느껴지진 않았어요. 오히려 체력훈련은 인내심을 기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 훈련을 견뎌냈다는 사실이 나중에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이 되더라고요. 양궁을 그만두고 나서도 그때의 경험이 참 많은 자산이 됐어요. “그때 그것도 견뎠는데, 이걸 못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어려운 순간을 이겨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지금도 그래요. 가끔씩 그때 40km를 달렸던 게 떠오를 때가 있는데, 생각만 해도 힘들죠. 그 힘든 경험이 저를 참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Q : 그렇게 힘든 훈련을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어쩌면 윤혜영 선수가 양궁을 참 재미있어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윤혜영 선수가 생각하는 양궁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 특유의 ‘손맛’이 있죠. (웃음) 사실 선수들은 시위를 손에서 놓을 때 느낌이 오거든요. ‘아, 이 화살은 과녁 중앙에 꽂힐 것이다’ 하고요. 그때 느껴지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그런 힘든 훈련도 저 손맛 때문에 버텨낸 거죠. 그리고 양궁 경기를 보면 아시겠지만 경기가 접전인 경우가 많잖아요? 결국 집중력 싸움인 건데, 그렇게 집중하다가 이기고 나면 긴장이 탁 풀리는 특유의 느낌이 있어요. 이겼다는 기쁨, 그리고 끝났다는 행복, 그런 것들이 양궁의 매력이 아닐까 해요.

물론 양궁의 매력이 활을 쏘는 데만 있는 건 아니에요. 많은 양궁선수들이 이야기하겠지만 양궁은 정말 나 자신과의 싸움이에요. 경기를 할 때도, 훈련을 할 때도 그렇죠.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긴 인내의 과정도 양궁의 매력이에요. 양궁은 인내 없이는 할 수 없는 종목이거든요. 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자기가 강해지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양궁을 손에서 못 놓은 것도 이 때문이죠.

 

Q : 이제 올림픽 출전 이야기를 할까 해요. 만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셨잖아요. 원래 올림픽 금메달이 목표였나요?

 

A : 아뇨 그렇지 않았어요. 사실 정말 어릴 때잖아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연금이 나오는지도 몰랐으니까요. 거기다 양궁에도 큰 세계대회가 많지만, 저는 올림픽이 처음 출전하는 대형 국제대회였어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뽑혀서 간 거죠. 그래도 당연히 금메달을 땄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는 것, 시상대 맨 위에 올라간다는 경험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지만 제가 죽기 살기로 금메달만 보며 달려온 건 아니에요. 저는 예전부터 소박한 꿈을 꾸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큰 사람이 되어야겠다, 올림픽에서 1등을 해야겠다, 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올림픽 금메달은 그냥 열심히 하다 보니 주어진 것 같아요. 내가 하는 양궁이 좋아서 열심히 했고 그렇게 꾸준히 하다 보니 좋은 기회가 왔죠. 죽기 살기로 하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저처럼 즐기면서 운동하는 것도 참 좋은 일이에요.

 

 

‘죽기 살기로 하는 것보다 즐기면서 하는 게 좋다’는 말, 많이 들어봤겠지만 참 좋은 말이지 않아? 너무 아등바등 사는 것보다 내가 너무 힘들지 않게 사는 건 중요한 일인 것 같아. 윤혜영 선수는 고등학교 때 ‘스물 일곱 살에 결혼해야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대. 그런데 정말 스물일곱에 결혼해서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 지금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물어봤어. 또 윤혜영 선수는 ‘아육대’의 해설위원으로, ‘출발 드림팀’의 양궁 코치로 방송에도 출연해. 윤혜영 선수들이 본 아이돌의 모습도 궁금하지?

 

 

Q : 소박한 꿈을 꾸면서 살았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꿈을 꿨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A : 정말 소박한 꿈인데, 저는 스물일곱에 결혼을 하는 게 목표였어요. 이건 고등학교 때 정한 거죠. 근데 거짓말처럼 제가 스물일곱에 결혼을 하게 되더라고요. 결혼을 위해서 노력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정말 신기하지 않아요?

 

Q : 우와, 정말 큰 인생의 목표를 이루신 거네요. (웃음)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A : 저는 대학을 마치고 실업팀에 있다가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당시 제가 속했던 팀에서 지원을 받았죠. 제가 대학원을 다닐 때 저를 많이 도와줬던 선배가 있어요. 사실 그 선배를 만날 때도 제가 참 많이 힘들 때였죠. 공부하는 것도 쉽지 않고,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휴학을 결심하려던 때 아는 언니가 그 선배를 소개시켜줬어요. 선배가 정말 저를 많이 도와주더라고요. 덕분에 그 힘들었던 학교생활이 갈수록 편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 선배가 흑심이 있었던 거죠. 선배가 저에게 먼저 대시를 하고 나중에는 프로포즈까지 했어요. 그 선배가 지금의 남편이에요. 덕분에 전 스물일곱에 결혼하겠다는 꿈을 이뤘죠.

 

Q : 결혼을 하고 나서 선수생활을 그만두신 거잖아요. 양궁선수 윤혜영 대 엄마 윤혜영, 어떤 게 더 좋으세요?

 

A : 당연히 ‘엄마 윤혜영’이 좋죠. 예전부터 저는 항상 ‘지금’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애들을 키우는 보람도 있고요. 어제는 아들이 보조바퀴를 떼고 처음으로 두발자전거를 탔어요. 그런 걸 보는 게 뿌듯하고 참 좋아요. 큰 아이가 여덟 살, 작은 아이가 다섯 살이에요. 정말 빨리 자랄 때죠. 얼마 전에는 소치 동계 올림픽이 열렸잖아요? 예전 같았으면 그런 말을 못했을 텐데 아들이 “4년 동안 열심히 훈련해서 한 번 만에 끝나네.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라고 하더라고요. 노력과 결실에 대해서도 차츰 알아가는 거죠. 그런 걸 보는 게 참 좋아요. 애들이 긍정적인 성격이라 많이 감사하게 되는 것도 있고요. 그래서 선수 윤혜영과 엄마 윤혜영 가운데 고르라면 저는 당연히 엄마 윤혜영을 고를 거예요.

 

Q : 나중에 그 올림픽에서 엄마가 금메달을 땄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드님이 정말 자랑스러워할 것 같아요.

 

A : 아직은 엄마가 대단했다는 걸 모르지만, 언젠가는 알게 되겠죠? (웃음)

 

Q : 요즘은 대학에서 양궁을 가르치신다고 들었어요. 성장하시며 선생님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셨는데, 이제 본인이 선생님이 되셨네요. 양궁을 가르치는 일은 즐거우세요?

 

A : 양궁을 가르치겠다고 결정한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처음 시작은 우연한 기회였죠. 원래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네가 한번 해봐’ 해서 시작했는데 이게 정말 저와 잘 맞는 일이더라고요. 일단 젊은 친구들하고 같이 이야기하고 활동하다 보니 저도 젊어지는 기분이 들어요. 학교가 집에서 멀어서 갈 때는 항상 힘들지만 돌아올 때는 웃으면서 돌아와요.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것도 많죠. 요즘 학생들이 정말 열심히 살잖아요. 그래서 항상 다음 수업이 기다려지고, 또 학생들이 보고 싶고 그래요.

 

Q : 선수 윤혜영, 엄마 윤혜영에 이어 ‘윤혜영 선생님’이 되신 거네요. 양궁을 가르칠 때 언제가 제일 보람이 있으세요?

 

A : 학생들이 활을 잘 쏘게 될 때보다, 제가 학생들이랑 가까워질 때 저는 제일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예전에 가르쳤던 학생들이 제가 요즘 방송 나오는 걸 보고 문자도 보내고 하더라고요. 그럴 때 참 좋죠. 학교 안을 걷다 보면 예전에 수업 들었던 학생이 와서 인사하고 갈 때도 있고요. 그리고 제 수업이 학교에서 정말 인기강좌거든요. 줄을 서서 듣고 가고 그래요. 그런 것만 봐도 참 뿌듯하고 좋죠. 선생님이라는 게 정말 보람있는 직업은 맞는 것 같아요.

 

Q : 요즘은 방송활동도 하시잖아요. 많은 아이돌 스타들을 만나보셨을 텐데 제일 애정이 가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A : 포미닛의 권소현이 제일 좋아요. 제가 양궁을 가르쳤는데 정말 열심히 했어요. 동호인 대회도 나갔는데, 첫 대회에서 2위를 했죠. 정말 겸손하고, 밝고, 끈기 있고, 의지 있는, 그런 친구예요. 이번에 아육대에서 씨스타 보라를 이기고 우승했는데, 정말 제 일처럼 기뻤어요. 제가 제일 아끼는 제자예요. 다른 좋은 친구들도 있어요. 쥬얼리 예원도 정말 좋죠. 당차고, 밝고, 열심히 하고.

 

 

내가 봤을 때도 윤혜영 선수는 밝고 젊음이 가득한 것 같았어. 아들이 처음 보조바퀴를 떼고 두발자전거를 타게 됐다는 사실이 정말 기쁘다는 윤혜영 선수, 자녀들과 소치 올림픽을 같이 보는 게 좋다는 윤혜영 선수. 작은 데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마음이 어쩌면 윤혜영 선수를 그렇게 강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어.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너희들에게도 한 마디를 부탁했어.

 

 

Q : 혹시 지금 갖고 있는 목표가 있나요.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 지금처럼 사는 게 제 꿈이에요. 지금처럼 늘 행복하게, 아이들이 크는 걸 보면서 또 수업하며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렇게 늙어가고 싶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소박한 사람이에요. 더 큰 행복을 원하지도 않고 그런데 욕심이 있지도 않아요. 이대로 계속 살 수 있으면 정말 좋겠네요.

 

Q : 이제 모든 질문이 끝났어요. 끝으로 MODU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겠어요? 특히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해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한 마디 부탁합니다.

 

A : 저는 사실 진로를 일찍 결정했고, 다른 길을 생각하지 않았지만 잘 된 경우인 것 같아요. 그러나 제 주변에는 저와 같이 양궁을 했지만 저처럼 국가대표가 되지도, 메달을 따지도 못한 친구들이 더 많죠. 저는 사람에게 한 가지 길만이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해보고 싶은 건 한 번쯤 다 해 보고, 많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자기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혹시 취미생활을 찾는 친구들이 있다면 양궁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저는 양궁을 하며 성격도 밝아지고 집중력도 높아진 것 같아요. 여러분도 양궁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해 보세요. 원하는 길, 꼭 찾길 바랄게요.

 

 

이렇게 윤혜영 선수와의 인터뷰가 끝났어. 국가대표 선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고 해서 엄격하고 무서운 분일까 봐 가기 전에는 걱정을 했었지. 그런데 직접 만나보니 정말 주위까지 밝게 만드는 좋은 분이었어. 덕분에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힘을 얻었던 것 같아. 너희, 윤혜영 선수의 말대로 취미로 양궁에 한 번 도전해보는 건 어때? 선수가 되는 건 윤혜영 선수 말대로 ‘자기와의 싸움’, ‘끝없는 인내’지만 취미로 하는 건 그렇지 않다는 말씀. 하는 사람마다 재밌고 좋아서 매주 찾게 된대. 그리고 아까 들었지?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거. 요즘 좀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 봄바람이 부니까 딴생각이 난다~ 하는 친구들은 양궁장을 한번 찾아가 보자.

양궁을 배우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중고등학생의 경우에는 동호회를 이용하는 게 제일 좋아. 약간의 참가비가 필요한 곳도 있지만 미리 신청하면 주말 동안 강습도 받을 수 있고 직접 활을 쏠 수도 있어. 멀리 있는 과녁에 자기가 쏜 화살이 꽂히는 느낌이라니, 어떨지 궁금하지 않아? 인터뷰를 하면서 나도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은 어서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자기 주변에 있는 양궁 동호회를 찾아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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