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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호] 아프리카 15,000km-네 남자, 넉 달 반의 차량 여행 이야기 vol.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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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15,000km

네 남자, 넉 달 반의 차량 여행 이야기 vol.2

 

글/사진 윤민재, 박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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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안녕? 나는 박윤성이라고 해.

MODU 11월 호부터 민재와 함께 여행기를 연재하고 있어. 아프리카를 꿈꿨고 여행했고 또다시 꿈꾸고 있는 한국 청년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1983년에 태어났으니 너희들보다 열 살 이상은 나이가 많을 것 같아. 그래도 아직까지 아저씨보다는 형 오빠 소리를 많이 들으니 너무 멀게 느끼지 말아줘. 나는 여행과 사진을 좋아해. 세계를 여행하며 마음껏 셔터를 눌러대었던 1년 동안의 시간은 나에겐 행복 그 자체였단다. 지금도 내 외장 하드에는 여행을 하며 찍었던 5만 여장의 사진이 고스란히 남아있단다. 나의 보물들 중 하나지. 학업에 또는 자신의 꿈을 위한 여정에 열심인 여러분들도 머지않아 세상 밖으로 나가 마음껏 여행하기를 바라며 인사를 마칠게.

여행자 되기 (윤민재)
박윤성이 떠난 포카라에 로베르토가 도착했다. 그를 중국에서 처음 만났을 당시, 나는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어색한 2주차 여행자였다. 그런 나에게 8개월째 세계를 떠돌고 있던 로베르토는 그야말로 로베르토느님이었다. 나는 다짜고짜 나도 세계여행자라며 사해여행자동포주의를 내세우며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였고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이후 메일로 이것저것을 물어대는 나에게 로베르토가 보낸 사려 깊은 편지들이 참 좋았어서 그에게 인도 여행을 함께 할 것을 제안했다.
스페인식 포옹으로 시작된 동행은 약 두 달간 계속되었다. 그는 정녕 여행 전문가였다. 로베르토는 가장 싼 숙소와 식당을 이용하면서도 건강을 해치지 않는 탁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또한 성실하게 정보를 수집하고 그를 바탕으로 빠르게 의사결정을 내렸다. 게다가 나 따위의 의견은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굵은 심지 역시 갖추었고 비타민을 위해 굉장히 맛이 없는 레몬 주스를 만드는 등의 여행 기술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하며 나는 침대 벌레쯤은 그냥 참고 잘 수 있는 남자가 되었고 맛을 보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와 고백하건대 동행 초기에 로베르토 몰래 고급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다.) 그리고 외국인 친구의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분노 표출에 대한 적절한 대처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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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함께 웃고 함께 우는 둘도 없는 친구이자 호흡이 척척 맞는 여행동반자가 되었고 사진 속의 나는 조금씩 더 여행자에 가까워졌다. 돌이켜보면 Africa 15,000km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기초체력은 그때 길러졌던 것 같다. 그리고 여행에 대한 바른 자세 역시.
그와 함께한 여행의 끝자락, 난생처음 도달한 사막의 별이 쏟아지던 밤, 나는 황홀한 기분에 로베르토에게 이 순간은 정말이지 특별하다고 이야기했다. 이윽고 로베르토가 특유의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민재. 삶의 모든 순간은 특별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멋진 말이라 나는 그가 옳다고 대답했다. 별똥별이 몇 개 떨어지고 로베르토가 다시 말했다. “난 네가 아프리카를 잘 여행할 것이라 믿어. 그리고 네가 어느 곳에 있든지 스페인에는 너의 집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가슴이 뭉클하여 질세라 대답했다.
“기다리고 있어. 멋진 이야기들을 가지고 찾아갈게.”
카우치서핑 (박윤성)
슬프지만 동양 남자는 인기가 없는 편이다. 그 현실은 카우치 서핑에서도 마찬가지다.
(카우치 서핑은 여행하고자 하는 곳의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무료 숙박 및, 운이 좋다면 가이드까지 받을 수 있는, 여행자들을 위한 비영리 커뮤니티다.)
무료숙박의 꿈에 부풀어 시작한 카우치 서핑. 하지만 동양남자에게 카우치 서핑은 냉혹했다. 친한 여자 후배의 경우 10개의 신청을 하면 8-9개의 답이 오고 그중 5개는 승낙이었다는데. 나는 10개를 신청하면 1개가 답이 오고 보통 미안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얻어걸리기만 하면 하루 50유로는 절약이기 때문에 나는 신청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 행선지는 카우치 서핑 최고의 인기도시 암스테르담! 기본 숙박비 100유로의 엄청난 곳이다. 나는 이것에 도전하기로 했다. 전략적으로 생각해보자. 나에게 팔아먹을 것은 무엇인가? 나를 받아줄 호스트는 누구인가? 불현듯 아프리카 차량 여행 계획을 이야기했을 때, 웨이트리스의 눈빛이 사랑으로 바뀌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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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할 것 같은 호스트들을 골랐다. 피터가 나의 레이더망에 들어왔다. 프로필 사진이 일단 바이크 위다. 자기소개에 바이크와 여행을 즐긴다고 써있다. 나도 서울에서 오토바이 좀 탔다. 나는 오토바이를 탄 사진으로 프로필을 바꾸고 쪽지를 보내 암스테르담을 들렀다 아프리카로 가서 차를 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돈이 없으니 잠을 좀 재워줄 수 있냐고 했다. 몇 시간 뒤, 피터가 답했다. 웰컴 앤드 텔미 유어 플랜
피터네 집은 최고였다. 피터가 회사에 간 동안 나는 도시를 쏘다녔고 피터가 집에 오면 그의 음식과 맥주를 먹으며 아프리카 여행 계획을 이야기했다. 피터는 나의 계획이 너무나 멋지다며 자신도 꼭 해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인기 많은 동양남자의 탄생이었다.
친구 만들기 (윤민재)
로베르토와 헤어진 뒤, 나는 달라이라마를 뵙기 위해 다람살라로 향했다. 그리고 박윤성과 케이프타운에서 재회할 날짜를 조율하며 새로운 팀원을 찾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운전과 캠핑을 할 줄 알고 성격도 좋은 영어권 친구 두 명 정도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다람살라에는 장기여행자들이 많다고 하니 그곳에 가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 눈이 감긴다. 나는 버스나 기차를 타면 꾸벅꾸벅 졸곤 한다. 역시나 한참을 졸고 있는 데, 웬 백인 여자가 툭 치며 말을 걸었다.
“너 한국인이지?”
“응 그런데 넌 누구냐?”
“난 에마라고 해, 여기는 마르타. 다람살라에 가는 중이니?”
“응, 벌써 다람살라에 도착한 거니?”
“푸하하, 아무래도 내가 너 안내를 좀 해줘야겠다.”
“그렇다면 내가 당장 음료수를 사도록 하지!”
휴게소에서 내려 콜라를 마셨다. 에마는 자신은 아일랜드에서 왔고 일 년 동안 서울에서 영어 강사로 일했다고 했다. 내 모습을 보니 한국의 지하철 생각이 나서 대번에 정체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깔깔거리며 내 옆의 인도 아가씨가 매우 난감해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부끄러웠지만 시작부터 동행이라니 운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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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다람살라에는 왜 가니?”
“달라이라마랑 친구!”
“다람살라에 친구가 있어? 처음 가보는 곳 아니었어?”
“아 나는 거기에 친구를 만들러 가는 거야. 2 주 뒤에 아프리카로 갈 거거든.”
“무슨 황당한 이야기니? 설명 좀 해줄래?”
나는 그들에게 네팔에서 만난 박윤성과 케이프타운에서 다시 만날 것이며 중고차를 사서 이집트까지 갈 것이라고 했다. 좌석이 네 개인 차를 살 것이기 때문에 두 명이 더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사실은 난 운전을 못 하기 때문에 고민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눈을 반짝이며 듣던 에마가 이야기했다.
“너 되게 재미있는 애구나? 내가 친구들을 좀 소개해줄 수 있을 것 같아.”
“아 정말? 면접을 좀 봐야겠군!”
“아이고, 줄을 서겠네?”
오. 달라이라마여! 생전에 포탈라 궁전에 다시 드실 수 있기를 바라옵나이다. 에마는 다람살라에 근거지를 둔 약 15인으로 이루어진 여행자 사회의 일원이었다. 나는 빠르게 섞여들었고 삼시세끼를 함께 먹으며 달라이라마의 강연과 요가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여행과 삶, 사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정말이지 고맙고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스캇을 만나다 (윤민재)
뉴질랜드 출신인 스캇은 잘 생기고 강하며 착한 남자다. 그는 넓은 어깨를 지니고 있으며, 그 어깨를 훌쩍 넘기는 드레드와 뺨과 목을 덮은 엄청난 수염으로 남성성을 표현한다. 구 개월에 걸쳐 오토바이를 타고 인도를 여행한 그는 다람살라에서 굽은 허리와 마음을 교정하기 위해 요가와 명상을 하고 있었다. 에마의 소개로 만난 우리는 대번에 의기투합하여 게으른 나날들을 보냈다. 스캇이라면 아프리카를 함께 여행해도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케이프타운 행 비행기를 예매한 밤, 스캇이 물었다.
“이제 넌 어디로 갈 거야?”
나는 스캇을 꼬드기려면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답형으로 멋있게 이야기했다.
“케이프타운, 남아공.”
“거기에 가서 뭐할 건데?”
“사막, 동물, 그리고 흑인 친구들?”
“그게 다야? 그것 때문에 파키스탄으로 안가고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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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의 표정을 보니 걸려들고 있었다. 나는 효과적인 말하기를 위해 약간의 침묵을 사이에 두고 대답했다.
“중고차를 사서 이집트까지 갈 거야.”
“뭐? 좀 자세히 말해봐.”
지금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스캇의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했다.
“생각을 해봤는데, 가장 멋진 아프리카 여행 방법은 중고차를 이용하는 거야, 사하라 사막과 세렝게티 초원을 직접 달려보자는 거지. 창밖으로 얼룩말이랑 코끼리가 휙휙 지나갈걸? 조사를 좀 해보니까 이게 실제로 가능하더라고. 관련 책도 나와 있고 블로그도 찾았어. 중고차를 적절하게 판매하기만 하면 비용도 저렴해. 그래서 네팔에서 만난 친구랑 케이프타운에서 만나기로 했지.”
“괜찮은데? 가서 캠핑하는 거야?”
“불 피우고 고기 굽고 별 보면서 맥주 마실 거야. 너도 가고 싶어?”
“당연히 가고야 싶지. 멋지잖아. 그런데 이미 명상 수업도 등록했고 오토바이 문제도 있고.”
이럴 땐 화제를 바꿔야 한다.
“그치? 근데 너 운전 잘하냐? 사실 난 못하거든.”
“인도에 오기 전 15년 동안 운전했어.”
“야. 그럼 생각 좀 해봐. 같이 가자!”
“알겠어. 생각해볼게.”
일주일이 지난 뒤, 나는 선발대가 되어 아프리카로 출발했다. 그리고 스캇에게 현지 조사 결과를 메일로 보내줄 것을 약속했고 부담 없이 결정하라고 했다. 그리고 우린 언젠가 어딘가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로부터 2주 뒤, 스캇은 명상 수업을 취소하고 오토바이를 팔아 케이프타운 비행기 표를 끊었다.
모든 남아공 사람들이 당신을 도울 겁니다 (윤민재)
여행자는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열 수 있는 신분 중 하나인 것 같다. 케이프타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색이 바랜 검정색 티셔츠와 인도 산 빨간색 바지를 입고 있던 나와 손주들을 보러 간다는 백발의 노신사가 만났다. 비행기가 뜬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깔깔거리며 여행과 삶을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앞자리에 앉아있던 말쑥한 정장 차림의 비즈니스맨이 고개를 돌리곤 흥미로워 엿듣게 되었다며 자신도 함께 할 수 있냐고 물어왔다. 그들이 요하네스버그에서 내릴 때까지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여행에서 만난 어떤 사람들은 내가 어디를 가보았는지, 무엇을 보았는지가 아닌 어떻게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지나온 길이 어떠했는지, 지금 어떻게 느끼는지를 묻는다. 그리고 나의 친구들과 가족들에 대해서 묻는다.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어서 나는 떠나기 전과 떠난 후, 겪었던 재미있는 일들과 힘들고 외롭다고 느꼈던 순간들, 그리고 길에서 만난 멋진 친구들 등에 대해서 모조리 이야기해댄다. 그러다 보면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고 의견을 묻고 대개의 경우 격려를 받게 된다.
아프리카 차량 여행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을 이야기하며 남아공의 치안, 도로사정, 사람들의 성향 등을 걱정하는 나에게 정장 차림의 비즈니스맨은 여러 가지를 답해주며, 남아공의 모든 사람들이 나의 여행을 도와줄 것이라 했고 백발의 노신사는 손주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해줄 것이라는 말로 내 여행을 지지해 주었다. 그들 덕분에 나는 불안감 대신 기대감을 품고 아프리카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라나다 동창회 (박윤성)
유럽에서 한국말을 하고 싶을 때는 네이트온을 켰다. 스페인에서 여행 자랑을 하던 중, 친구 지은이가 스페인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와! 거기 가면 공짜 침대에 공짜 밥이 있다.
지은이는 고등학교 때 만난 동네 친구다. 김지은, 사업가 아버지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여자. 스무 살부터 독립하여 혼자 힘으로 살아갔다. 다양한 일을 하면서 세상을 배워갔던 멋진 친구였다. 몇 년간 주고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스페인에 정착했다니! 역시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도 나다운 방식으로 그녀에게 찾아가야지.
지은이는 남부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한인 민박 ‘에스뻬란싸’를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손님을 가장하여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장사하시죠? 거기 어떻게 가요?”
“왜 이렇게 비싸요? 사기 아니에요?”
“왜 이렇게 찾기가 힘든 거에요?”
진상 고객 코스프레를 했다. 나중에는 거리표지판에 왜 한글이 없냐고 따지기까지 했다. 그렇게 그녀의 짜증 게이지를 높여갔다. 정 그러시면 픽업을 나오겠다는 그녀의 목소리 뒤에 숨겨진 깊은 한숨이 느껴졌다. 그리고 10분 뒤, 그라나다의 메인 스트리트 어딘가에서 우리는 만났고 그녀는 엄청나게 놀란 얼굴로 나를 때리며 반가워했다. 서프라이즈!
‘에스뻬란싸’에서 펼쳐진 작은 동창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사진들을 보여주며 그간의 여행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아프리카로 가서 중고차를 살 계획이라고 했다. 지은이는 손님들 중에 여행쟁이들이 많아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프리카 차량 여행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꼭 여행을 성공시키라고 했다. 와인과 삼겹살에 용기백배한 나는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더 많은 사진과 함께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친구의 응원에 힘입어 아프리카로 향했다.
아프리카 도착 (윤민재)
아침 7시경 케이프타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분이신 김은영 아저씨께서 마중을 나와주시기로 하신 상태. 하지만 입국 심사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담당자는 리턴 티켓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입국을 시켜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아프리카 차량 여행 계획에 대해 수차례 이야기했으나 담당자는 내가 불법 체류자일 수 있기 때문에 안 된다는 소리만 했다. 마중 나온 사람이 있다고 해보아도 다른 여러 나라의 도장이 찍힌 여권을 보여주어도 빌어보아도 화를 내 보아도 담당자는 팔짱을 낀 채 리턴 티켓 소리만 반복했다. 기분이 상한 나는 불법 체류를 마음 먹었으면 리턴 티켓을 사서 찢어버리면 되겠다고 비아냥거렸고 결국 직책이 높아 보이는 남자에게 불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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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남아공 관공서의 업무처리 방식은 굉장히 딱딱했다. 절차는 모든 것에 우선하고 매뉴얼은 그야말로 실재한다. 입국을 하고 차량을 구매하고 등록하고 보험에 가입하고 남아공을 빠져나갈 때까지 수많은 서류와 도장들 사이에서 얼마나 갈팡질팡 했었는지. 게다가 그 위에는 고압적인 공무원들이 있는데, 어떻게든 흠을 찾아내어 불이익을 주는 것에 매우 열심이다. 입국심사장의 높아 보이는 남자는 내 설명을 다 듣더니 리턴 티켓을 사라고 했다. 내가 항의하자 나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나를 추방시켜버리겠다고 했다. 아뿔싸 무언가 거대한 관료제의 벽이다. 나는 결국 리턴 티켓을 구매하겠다고 했고 직책이 높아 보이는 남자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담당 직원에게 이끌려 Etihad Airlines의 창구로 갔다. 그리고 아부다비 행 티켓을 구매했다. 티켓은 500USD 가량이었고 취소하는 수수료가 200USD 정도였다. 나는 부아가 치밀어 올라 이 티켓이 남아공의 첫인상이라면서 분통을 터뜨렸고 담당 직원은 그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끌고 가 여권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입국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은영 아저씨께서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늦어서 걱정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 드리자 아저씨께서는 남아공 사람들에게서는 융통성을 거의 찾아보기 힘드니 매사 꼼꼼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 하시더라. 아저씨 댁에서 아침을 먹고 정신을 차리니 여기가 아프리카구나 싶었다.
* 환불이 된다던 리턴 티켓은 서른 통이 넘는 전화들과 십수번의 이메일, 사무소 방문 등에도 불구하고 아직 환불이 되지 않고 있다. 그와는 별개로 Etihad Airlines은 나에게 꾸준히 자사의 홍보 메일을 보내온다.
재회, 그리고 시작 (박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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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 놈은 도대체 뭐하는 거야?’
아프리카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나는 민재를 원망했다. 이 비행기는 한밤중에 치안이 나쁘기로 유명한 나라에 나를 떨궈놓을 것이다. 민재는 자신이 알아서 픽업을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물음에는 답이 없었다. 나는 이대로 케이프타운 공항의 변사체가 되는 것인가? 창밖을 바라보며 네팔에서 잠깐 만난 놈을 믿은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했다. 혹시 민재가 어딘가에 감금된 것인가? 그렇다면 어쩌지? 나는 불안해진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똑딱똑딱”
‘이건 뭐지? 설마 비행기에 시한폭탄이? 이건 모두 민재 탓이야!’
게슴츠레 눈을 떠보니 내가 시계 소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옆자리의 흑인 소녀의 목소리였다. 너무 신기하여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넌 어디서 왔니?”/  “께이쁘따운.”
“이름은 뭐야?”/  “봉게카 응-록꼬”
그녀의 발음은 신기했다. 마치 시계 소리를 낼 때처럼 혀를 입천장에 튕기는 똑- 소리를 내면서 ‘응-록(똑)꼬’라고 발음했다. ‘응꼬사’ 족의 언어라고 했다. 그녀는 시계 소리 외에도 입천장 바깥쪽에서 내는 ‘쪽-‘소리와 입천장 안쪽에서 내는 ‘응-똑’ 소리 등 희한한 발음을 쓰며 이야기했다. 환한 얼굴의 그녀에게 요상한 언어를 배우니 불안감이 가셨다.
공항에 도착하여 봉게카 응-록꼬에게 인사를 하고 민재에게 허겁지겁 전화를 했다. 흑인들이 받으면 어떡하지?
“여보세요?”
민재다! 민재가 받았다! 불안했던 마음이 한방에 가셨다. 검색대를 넘어 리턴 티켓 공격을 당하고 남아공에 입국했다. 저 멀리에 민재가 보였다. 나는 달려가서 민재를 부둥켜안았다. 몸이 길고 가늘었다.
“자 아프리카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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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민재
1985년생,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Bain & Company 재직 중. 처음 떠난 여행이 세계여행이 되었다. 독서와 작문을 좋아한다. 현재 Africa 15,000km를 집필하고 있다.
● 박윤성
1983년생,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Welcomm Publicis Worldwide 재직 중. 사진을 좋아한다. 여행 사진만으로도 외장하드 두 개는 거뜬하다. 현재 Africa 15,000km를 집필하고 있다.
● Scott Mitchell
1979년생, 뉴질랜드 출생. 인도에서는 오토바이. 아프리카에서는 자동차. 그는 언젠가 요트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 Tom Roberts
1979년생, 호주 출생. 일년의 반은 호주에서, 나머지 반은 호주 밖에서 보내는 생활 여행자. 그는 어디든 갈 수 있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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