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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 아프리카를 달리다, 네 남자의 차량 여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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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달리다, 네 남자의 차량 여행 이야기

글/사진 윤민재, 박윤성

 

MODU 독자 여러분, 안녕? 나는 윤민재라고 해. 이렇게 글로 만나보게 되어 반가워. 이렇게 우리의 여행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야. 적어 내려가는 글들에 부족함이 보이더라도 너그럽게 읽어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아. 2009년, 여름. 북경행 비행기에 올랐어. 그리고 2010년 여름에 돌아왔지. 중국, 네팔, 인도를 지나 아프리카를 여행했고 중동을 돌아 유럽으로 갔었단다. 약 1년 동안 세계를 만나고 돌아왔어. 눈을 감고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는 기억들이네. 그리고 지금부터는 가장 행복했던 넉 달 반의 아프리카 자동차 여행 이야기를 풀어 놓으려고 해. 글쎄,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나와 윤성이가 만났던 네팔부터 시작해 볼게.

 

참! 소개해야 할 친구들이 있어. 공동기고자이자 네팔에서 만나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된 박윤성, 인도에서 만나 나를 믿고 아프리카까지 와준 잘생긴 스캇, 나미비아부터 우리 차에 탑승한 상남자 톰이 그들이야. 이들이 없었다면 아프리카가 그렇게 특별할 수 없었을 거야.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윤민재, Scott, 박윤성, T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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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만난 중국인 (박윤성)

 

인도에 도착하여 일주일, 그리고 열흘이 지나서도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소화기관에 나는 세계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길거리 음식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신기한 음식을 마음껏 먹으니 여행이 더욱 풍성해지는 느낌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여행의 큰 즐거움이라고 생각했다. 참 좋았었다. 극심한 배탈이 나기 전까지 말이다. 그 뒤 열일곱 번의 구토와 열두 번의 설사가 지나갔다.

 

40도를 넘나드는 날씨는 여행의 욕구를 방전시켜 버리는 것 같았다. 음식이라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었다면, 아니 콜라와 초콜릿 따위로 연명해도 좋으니 날씨가 조금만 시원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압력밥솥 같은 뉴델리, 빠하르간지의 가까이하기엔 너무 무서워져 버린 길거리 음식들을 지나며 신세 한탄을 했다.

 

한여름, 이글이글거리는 빠하르간지는 인파와 우파, 견파들이 만들어내는 흙먼지가 풀풀 날렸다. 거기에 도로변 상점들이 돌리는 발전기와 오토릭샤가 뿜어내는 매캐한 연기가 더해져 콧속은 총천연색 커리를 뒤집어쓴 것 같았다. 그리고 고막을 때리는 시끄러운 소리들. 이 모든 소란 속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배탈이 나기 전까지의 인도는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이렇게 지내다가는 인도가 온통 한여름의 빠하르간지로 채워져 버릴 것 같았다. 나는 도망치듯 인도를 빠져나왔다. 한동안 국경을 넘어 만난 사람들에게 인도 욕을 해댔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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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포카라에 도착했다. 산에서나 접할 수 있는 풀 내음 깃든 공기가 그곳에 있었다. 창밖으로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방을 잡았다. 군청의 호수가 초록의 나무숲과 어우러져 있었고 선선하게 불어오는 잔잔한 바람은 히말라야의 깨끗한 기운을 가져다주는 듯했다. 주위의 모든 것이 고요했다. 방안도 무척 깨끗했다. 오랜만에 구경하는 화장실 딸린 방! 물이 잘 나오는 수도꼭지! 적절한 수압의 변기!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땀이 나지 않는 방의 온도! 하얀색 침대 시트에서는 빛마저 나는 듯했다.

 

호숫가의 카페를 찾았다. 호수를 마주 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내가 앉은 자리 옆 테이블에는 동양인이 한 명 앉아있었다. 무채색의 옷차림만큼 얼굴도 무표정했다. 그는 노트북을 열고서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일본사람 같아.’

 

나는 관찰을 그만두고 커피를 시켰다.

 

“익스큐즈 미. 음 포테이토 습 플리즈!”

 

나의 주문을 받고 돌아서는 웨이터를 그 무채색의 일본사람이 불러 세웠다. 혀를 굴리는 발음과 낮게 깔리는 목소리 톤, 그것은 전형적인 중국사람의 음성이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쳐다보다 눈이 살짝 마주쳤는데 눈매가 부리부리한 것이 딱 중국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때,

 

“안녕하세요?”

 

그 외국 사람이 내게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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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을 만나다 (윤민재)

 

‘세계 일주하고 올게!’

 

부럽다는 사람, 조심하라는 사람, 많이 느끼고 오라는 사람 등 여러 배웅을 받으면서 대차게 출발했다. 북경에서 시작한 여행은 만리장성과 진시황릉을 지나 포탈라 궁전을 거쳐 네팔까지 이어졌다. 명소에 들러 사진을 찍고, 관심도 없는 박물관에서 감탄하기 연습을 하고, 동네에 빼놓고 먹지 않은 것이 없나 식단을 짜면서 눈앞의 맥도날드 참기를 한 달 반, 돌아보니 여행 참 열심히 했다. 열심히는.

 

그러다가 포카라에 ‘콱’ 처박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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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는 도피생활을 하기에 최적의 장소 중 하나이다. 저렴하고 훌륭한 식당과 숙소, 아름다운 경관과 쾌적한 날씨, 심심하지 않을 만큼의 소일거리도 있다. 게다가 마음만 먹으면 한국인들은 물론 아무도 만나지 않을 수 있다. 아! 진짜 좋다. 세계 일주고 나발이고 그냥 여기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게을렀다.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호숫가를 조금 걷다가 내키면 잠깐 끄적거렸고 이 식당 저 카페를 기웃거리다가 저녁때가 되면 어딘가에 앉아 무언가를 먹으며 맥주나 마셨다. 여기까지 와서 고작 한 문장이면 정리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니! 시간이 이렇게 지나가는 것에 대해 약간의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사실은 이게 내가 원하던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왜 여행을 하고 싶었을까? 세계 일주를 하겠다고 해놓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여행의 시작점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텐데, 내 경우에는 탈출 욕구였다. 여행 전, 나는 2년 2개월 동안 산업기능요원으로 회사에 다녔다. 당시 나의 일상은 싫어도 해야 할 것들과 약속들로 가득했는데, 그 가운데에서 월세와 각종 고지서 및 영수증들이 끝나지 않을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또한, 숨돌릴 만하면 찾아오는 자기계발과 경력관리의 압박은 계속되는 연애 실패와 함께 탄탄한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으악, 나는 정말이지 이 모든 것들로부터 떠나버리고 싶었다.

 

포카라에서는 여행자의 의무 아닌 의무 ‘새로운 경험’으로부터도 떠나버렸다. 무기력함을 근저에 깔고 유예 기간을 설정하고 재설정하기를 반복하며 어떠한 의미로는 스스로 상을 주고 있었다. ‘기회비용’,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곳’ 등을 이유로 매일 수행하던 과업을 그만두고 나니 ‘떠난다’로 대표되는 탈출 욕구가 조금씩 해소되고 무언가를 보고 싶고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나더라. 돌이켜보면 나는 그제야 여행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폐와 호수가 보이는 식당에 앉아 인터넷을 하고 있었는데, 멀리서 흰 티셔츠에 빨간 바지를 입은 헬멧 쓴 동양인이 자전거를 끌고 나타났다. 그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 털썩 주저 앉더니 종업원에게 ‘카페라떼 더블 샷’을 주문했다. 이곳에서 저런 주문이 가능하긴 한 걸까? 뭔가 부잣집 도련님 같았다. 왠지 신경이 쓰여 노트북을 보는 척하면서 힐끔힐끔 훔쳐보았다. 처음에는 일본인인 것 같았는데, 행동거지를 보니 한국인이었다.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는 나와는 달리, 환한 표정으로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이 부러웠다. 기회를 봐서 말을 걸어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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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본다는 것 (윤민재)
 
‘하늘 좀 봐! 미쳤어! 빨리 나와 봐!’
윤성의 장점 중 하나는 아름답게 본다는 것이다. 내가 스쳐 지나가 버리는 것들에 윤성은 감탄하고 좋아하며 행복해한다. 한번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윤성이 노을진 창문 밖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갔다. 윤성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었고 나는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같은 것을 보고 있는데 어찌 이렇게 다를까? 나에게는 깡충거리는 윤성이 더 특별해 보였다. 해가 완전히 넘어간 뒤에도 여전히 감탄해 있는 윤성에게 물었다.
‘그렇게 좋아?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
‘보라색이잖아! 보라색 석양은 처음이야! 어떻게 하늘이랑 구름이 저렇지? 내가 여태까지 본 석양 중 최곤데? 예쁘지 않아?’
‘응. 예쁜데, 그게 그렇게 좋으냐는 거지.’
‘예쁘잖아! 너는 안 좋아?’
‘아냐, 나도 좋아.’
북경으로부터 포카라까지 약 두 달여, 많은 명소를 거쳤다. 정말 멋진 곳이었지만 나는 윤성과 같은 모습으로 좋아하지 못했었다. 히말라야 산에 올라 만년설을 보았을 당시를 제외하면 나의 감탄에는 무언가 중요한 것이 빠져있었고 의무감 비슷한 것이 그 자리를 대신했었다.
‘여기 찍힌 거 보면 저 끝까지 다 보이잖아. 공기가 정말 깨끗해서 먼지가 하나도 없어야 이렇게 되는 거야, 이렇게 깨끗한 하늘은 난 서울에서 딱 한 번 봤었어.’
‘아, 정말? 그렇게 달라?’
‘당연하지! 그리고 빛이 중요한데 모든 건 해 질 녘에 가장 예뻐. 빛이 제일 예쁘거든.’
‘그렇구나, 앞으로 좀 자세히 봐야겠다.’
추후에 알게 된 사실이다. 윤성은 상점에서 산 과자를 먹을 때나 해 질 녘 사막 모래언덕에 있을 때, 토마토 통조림을 이용해 만든 스파게티를 먹을 때나 야생동물들이 가득한 초원을 가로지를 때, 소금을 대강 뿌려 구운 민물고기를 먹을 때나 돌고래가 있는 바다에 뛰어들었을 때 모두, 남들보다 몇 배는 더 행복함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물론 그만큼 불평도 많다. 나는 이러한 윤성의 특징이 우리가 아프리카에서 다섯 달 동안 최고의 여행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녀석 덕분에 조금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조금 더 예쁘게 볼 수 있었으며 조금 더 즐거울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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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경로 (박윤성)
우리는 모두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로 이어지는 여행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순서가 달랐다. 민재는 인도를 여행한 뒤, 남아공에서부터 이집트로 아프리카 대륙을 훑어 올라갈 계획이었고 나는 유럽을 여행한 뒤, 모로코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갈 생각이었다. 민재가 인도로 떠나고 내가 히말라야 산에 오르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프리카, 같이 가는 거 어때? 차 사서 종단할 건데.”
“뭐? 차를 산다고?”
민재는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자신은 중고차를 사서 여행을 할 생각이라고. 그 말을 듣자 나를 흔드는 기억들이 있었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BBC TV 시리즈 ‘Long Way Down’. 그것들을 보았을 때의 흥분이 느껴졌다. 그리고 90cc 모터사이클 벤리를 타고 전주로 떠났었던 밤이 생각났다. 나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차량 여행의 동반자 (윤민재)
 
‘아프리카 말이야. 중고차로 여행해보는 건 어때?’
‘중고차? 미친 것 아니야? 그게 가능해?’
처음에 박윤성은 미쳤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솔깃했는지 차량의 요건, 정비, 필요한 장비 등 구체적인 것들을 물어왔다. 나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고 차량이 고장 나면 중간에 버리고 로컬 교통수단을 이용하면 되지 않느냐는 무책임한 이야기를 했다. 심지어 나는 운전도 잘 못한다고. 어쨌든 아프리카에 도착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있으며, 충분히 가능성 있는 검토해볼 만한 계획이라는 주장을 해댔다.
사실 이제 와 고백건대, 포카라에서 박윤성의 여행 계획을 헝클어 놓았던 당시만 해도 나는 이번 Africa, 15,000km 차량 여행을 실제로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었다. 그것은 계획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아이디어 정도에 불과한, 그나마도 현실성 없는 공상 같은 것이었으며, 그것이 좋은 생각이라는 믿음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며 면허는 있었지만, 운전 경험도 별로 없는데 아프리카 차량 여행에 대한 믿음은 무슨 놈의 믿음이란 말인가?
하지만 내가 어떻게 준비를 하고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만은 확고했었다. 윤성과 스캇, 로베르토, 조던 등 길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 앞에서 Africa, 15,000km 여행 계획을 이야기했던 것들. 지금 생각해보면 매우 기특하고 운까지 좋았다. 그 덕분에 백일몽을 현실로 만들어 준, 최고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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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rica 15,000km의 시작 (박윤성)
 
민재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중고차를 사서 아프리카를 여행한다’는 말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치명적으로 다가왔다.
‘냉정해지자!’
몹시 끌리는 얘기였지만 실현 가능 여부를 따져 봐야 했다. 우선 남아공에서 차를 살 수는 있는가? 설령 차를 산다고 하더라도 그 차를 타고 국경을 넘을 수 있을까?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인 아프리카를 안전하게 여행한다는 게 가능하긴 할까? BBC 촬영 팀은 총을 든 사설 경비원을 데리고 다니던데. 만약 여행 중인 나라에서 내전이라도 일어난다면 우린 그들의 분풀이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거다.
‘아마 중고차가 아프리카를 싸게 잘 여행하는 방법일걸? 친구 네 명만 모으면 돼.’
민재는 금전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방법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국립공원에서 투어를 이용하는 방법과 숙식과 이동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오버랜드 트럭킹 프로그램이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저렴하지만, 세렝게티 등의 국립공원에 들어갈 때에는 차와 기사가 딸린 투어를 이용해야 하는데 그 가격이 만만치 않다. 트럭킹은 매우 비싼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만약에 차가 있다면, 국립공원에서 가이드와 차량에 대한 비용 없이 입장료만 내면 된다. 네 명이 모인다면 차 가격과 유류비를 나눠낼 수 있어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도 했다. 차를 사서 타고 다니다 적당한 시기에 팔고 떠나버리면 그것만큼 이상적인 여행 방법이 또 어디 있겠냐고 했다.가슴이 뛰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게 가능한 일이라면 정말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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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에서 민재와 함께한 것은 고작 삼일. 카페에서 처음 만난 때부터 우리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마치 눈이 맞은 연인들처럼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삶에 대하여, 그리고 경험들과 읽은 책들, 본 영화들, 좋아하는 음악에 관한 이야기들을 통해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들에 대해서 알아가게 되었고 그것이 참 좋았다. 이 친구와 함께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싶었다. 민재는 일단 남아공에 간 다음 진행해보자고 말했다. 내 계획과 반대였기에 남아공에서 시작해야만 하는 이유를 물었다.
“남아공에 아는 사람이 있거든, 그리고 북쪽으로 가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만나기가 수월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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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녀석은 몽상가일까, 아니면 전략가일까? 만약 이 친구와 인도를 함께 여행했다면 어땠을까? 혼자 했던 시간보다 좋았을까? 충동적인 나와는 다른 그의 성향이 더 멋진 여행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함께였다면, 빠하르간지에서도 웃음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 여행의 동반자를 만난 것이 아닐까?
민재에게 말했다.
“민재야, 아프리카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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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민재
1985년생,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Bain & Company 재직 중. 처음 떠난 여행이 세계여행이 되었다. 독서와 작문을 좋아한다. 현재 Africa 15,000km를 집필하고 있다.
● 박윤성
1983년생,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졸업.
Welcomm Publicis Worldwide 재직 중. 사진을 좋아한다. 여행 사진만으로도 외장하드 두 개는 거뜬하다. 현재 Africa 15,000km를 집필하고 있다.
● Scott Mitchell
1979년생, 뉴질랜드 출생. 인도에서는 오토바이. 아프리카에서는 자동차. 그는 언젠가 요트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다.
● Tom Roberts
1979년생, 호주 출생. 일년의 반은 호주에서, 나머지 반은 호주 밖에서 보내는 생활 여행자. 그는 어디든 갈 수 있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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