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21호] 맛을 사로잡다-파파스 사장 이기영

13억 중국인의 맛을 사로잡다

파파스 사장 이기영

인터뷰/글 권태훈

가난, 중학교 중퇴, 심지어 요리를 한 번도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지만 창업하여 오늘날 38개 지점, 자산 1,000억 원에 이르는 외식 기업을 만든 한국인이 있어. 심지어 말도 잘 안 통하는 중국에서 말이야. 처음 만나자마자 문득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느냐고 물어봄으로써 인터뷰 나간 MODU를 당황하게, 그리고 부끄럽게 만든 그. 이번 호 MODU 테마가 글로벌 진로라는 것을 듣고 중국에서 친히 한국에 들어와 인터뷰에 응해주었는데…. (마침 한국에 잠깐 출장 왔었다는 건 비밀)

한식으로 13억 중국인의 맛을 사로잡은 그의 이야기에 빠져보자.

 

 

먼저 파파스에 대해 잘 모를 한국 청소년들을 위해 간단히 회사 소개 부탁합니다.
중국에 본사와 지점을 두고 있는 한식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입니다. 창춘 1호점 창업을 시작으로 베이징, 선양, 하얼빈 등 중국 전역에 38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자산 1,000억 원 정도의 외식 기업입니다.
특별히 중국으로 건너가 창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부터 한식 전문점을 열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중국을 간 것은 아니었어요. 다만 제가 처음 중국에 건너간 1990년대 초는 그 전까지 닫혀있고 폐쇄적이던 중국이 막 개방을 시작하고 우리나라와 수교 협정도 맺기 시작하던 때였죠. 불확실하기는 하지만 엄청난 인구와 상권 등 기회와 가능성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뛰었죠. 그래서 중국어 한마디 할 줄 몰랐지만 무작정 중국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혼자 떠났죠. 처음에는 중국에서 의학을 공부해서 돈 없는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중의학 대학에 입학해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실습 도중 제 진로를 크게 바꾸는 사건이 벌어졌죠. 병원 복도에서 심장병을 앓고 있던 한 어린이가 수술비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 한 건 제가 의사였지만 그 아이를 도울 수 없었다는 거에요. 저에게는 돈이 없었고, 제 마음대로 무료 진료해줄 수 있을 만큼 병원에서의 권한도 없었던 거죠. 이때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되었어요.
“내가 직접 의사가 되어 치료해줄 필요 없이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의사를 고용해서 약자를 도와주는 게 훨씬 빠르겠다. 그리고 훨씬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줄 수 있겠다.”
그러면 심장병 어린이 환자들을 돕기 위해 창업을 결심하게 된 거네요. 
맞아요. 사업을 해서 번 돈으로 심장병 환자 수술비를 지원해주고 이들의 아빠가 되어주자 결심했어요. 그래서 회사 이름도 아빠라는 뜻의 중국어인 ‘파파스’라고 지었죠. 다행히 파파스의 성공으로 오늘날까지 43명의 아이들에게 심장병 수술비를 지원해줄 수 있었어요. 수술 이후에도 장학금을 주면서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고요.
파파스의 시작, 1호점 위기, 그리고 차별화 전략
 
그런데 많은 사업 아이템 중에서 왜 한식 전문점을 택하게 되었나요? 심지어 요리를 전혀 배운 적도 없었다고요?
막상 사업을 하려고 보니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할 수 있는 거보다는 잘 될 것 같은 거를 찾기 시작했죠. 그러다 문득 한식 아이템이 떠올랐어요. 당시만 해도 중국인들에게 한식은 낯설었고 한식 전문 음식점이란 개념도 거의 없었어요. 저는 이게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죠. 한국 음식, 한국 문화에 대해서 자신이 있었고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거든요. 용기 내 그동안 저축한 돈, 지인으로부터 빌릴 수 있는 돈, 당시 묵고 있던 작은 단칸방까지도 빼서 돈을 모두 모아 1994년에 중국 창춘에 첫 한식 레스토랑 파파스를 열었어요.
중국 하면 음식문화가 발달했기로 유명하고 입맛도 까다롭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중국인들의 입맛을 공략했나요?
첫 번째로 한식을 중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했어요. 쌈밥이나 불고기가 주 메뉴인데 이것을 한국 스타일로 그대로 내놓지 않고 중국풍 소스를 첨가하고, 크기도 중국인이 한입에 먹기 쉽도록 만들었어요. 그러면서 음식의 본질인 재료와 맛은 한식 고유의 맛을 잃지 않도록 노력했어요. 아무리 비싸다 하더라도 재료는 반드시 한국에서 수입하고 한국산 양념만 사용했고요.
두 번째로 차별화되는 문화를 팔았어요. 테이블과 의자, 소품 모두 치밀하게 고민해서 파파스가 직접 만들었는데 마치 고급 호텔에서 먹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려 노력했어요. 한지로 만든 전등, 수레바퀴를 이용한 테이블 등 중국 전통품을 이용해서 예스러우면서 독특한 느낌을 주기도 했고요. 이러면 고객은 자연히 비싼 음식 값도 아까워하지 않고 지불하게 되죠. 음식 값에다가 분위기와 문화를 파는 값을 더 얹을 수가 있잖아요.
듣고 보니 정말 차별화되었네요. 맛은 한식이지만 중국인의 입맛과 스타일에 맞춘!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나요?
위기가 곧 기회였던 거 같아요. 파파스 1호점을 개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큰 위기가 있었어요. 주방장이 사고를 치고 도망간 것이었죠. 당시에 제가 요리를 직접 하지는 못하다 보니 총괄할 한식 전문 주방장을 채용했었는데요, 이 사람이 일 년 동안의 월급을 선불로 달라는 거였어요. 대안이 없기도 했고 계약서도 썼기 때문에 불안했지만 들어주었죠. 그런데 이후부터 그만둔다는 말만 안 한다 뿐이었지 그만두고 싶은 티가 확 나는 태도로 대충 일하기 시작했어요. 보조 주방장들에게 요리도 안 가르쳐주고 식자재 구매할 때는 납품업자로부터 자기 수수료를 따로 챙기는 등 주인이 먼저 그만두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죠. 결국, 쫓아낼 수밖에 없었어요.
이후부터는 앞이 캄캄했어요. 한식 요리를 전문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없는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이대로 끝낼 순 없다는 오기가 생겼어요. 이미 고용해놓은 사람들도 내가 포기하면 일자리를 잃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니 더 물러설 수 없었고요. 그래서 그나마 요리를 조금 할 줄 아는 조선족 아주머니들과 연구에 들어갔죠.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식 요리들을 하나씩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했고 이 조리법을 서로서로 공유했죠. 그리고 부족하다는 생각이 더 요리법을 공부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수요를 조사하게 만들었어요. 게다가 기존 조리방식에 얽매이지도 않았으니 다양하고 창의적인 퓨전 한식들이 쏟아져 나왔죠.
이후 파파스만의 독특한 인재 정책도 지점 확대에 한몫을 했다고 들었어요.
네, 중국 전역의 파파스 지점들은 모두 말단 직원 출신 사장들이 경영하고 있어요. 단순히 본사에서 보낸 점장이나 매니저가 아니라 한 명 한 명이 월급을 받는 최고경영자예요. 처음에 왔을 때는 주방에 그릇을 씻다가, 잘하면 조리를 배우고 주방장이 되었다가, 계속 성과를 내면 경영관리자가 되었다가 최종적으로는 지점의 사장으로 승진을 시켜줘요. 능력만 있고 노력한다면 나이와 학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죠. 그리고 사장이 되면 자기 회사처럼 그 지점을 총 책임지고 자유롭게 경영하도록 전적으로 맡겨요. 저절로 주인의식이 발휘되면서 성과들이 나기 시작했죠.
어린 시절 지독한 가난, 중학교 중퇴. 
하지만 부족함은 가장 큰 스승이다
어린 시절 대표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제 어린 시절은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어요.
지독한 가난, 그리고 공부하고 싶은데 배우지 못한 한. 집이 워낙 어려워서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안에 보탬이 되어야 했죠. 그래서 새벽부터 신문 돌리고, 구두도 닦고, 공사장 일도 하는 등 안 해본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졌죠. 특히 억울했던 것은 공부를 하고 싶은데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어요.
그렇게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이 언제까지 지속되었나요?
가난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어요. 결국, 중학교 1학년 때는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에 취업해서 일을 해야 했죠. 이때는 중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들, 공부하는 학생들만 봐도 부러워했던 기억이 나요. 공부를 정말 하고 싶어했던 탓에 온갖 방법을 다 써보았었어요. 처음에는 공사를 마치고 밤에 집에 들어와 책을 읽으려 했지만 피곤함에 녹초가 되어서 도저히 몇 분을 버티기 힘들었죠.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았던 것이 일을 하며 타는 오토바이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었어요. 백미러나 오토바이 앞에 책을 묶어놓고 오며 가며 보고, 영어 단어 등을 외우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체계 없이 혼자 공부하는 게 제대로 될 리 만무했죠. 이런 생활들이 이십 대가 되어서도 계속되면서 결국 고등학교, 대학교도 진학하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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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나 환경이 불쌍한 게 아니라
좌절하는 자신이
불쌍한 것이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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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어려운 환경과 부족함들이 큰 스승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저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은 성공할 가능성도 적다고 생각해요.
나폴레옹이 어떻게 영웅이 될 수 있었을까요? 키가 작고 열등감이 많았기 때문이죠. 기록에 따르면 나폴레옹의 키는 150cm 중반 정도였다고 하는데, 동양인보다 평균 신장이 큰 프랑스 사람들의 신체 성향을 고려하면 여자들보다도 작은 키였다고 해요. 그러나 이에 좌절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키를 극복하려고 더 생각을 하고 더 노력하다 보니 키 대신 다른 많은 능력들을 얻게 되었어요. 열등감이 사람을 바꾼 것이죠.
저 역시 마찬가지로 생각했어요. 가난과 배우지 못함 등의 부족한 과거들이 있었기에 지금을 살아가는 방법들을 선택하게 했고 더 노력하는 습관을 들이게 도와주었어요. 어릴 적부터 위기가 익숙했기 때문에 중국이라는 새로운 미지의 시장으로 도전하는 것이 크게 두렵게 느껴지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저는 부족함은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대한민국 청소년, 청년들이 매우 힘들고 이에 좌절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저는 좌절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나 환경이 불쌍한 게 아니라 좌절하는 자신이 불쌍한 것이라 생각해요. 그 어려움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그 조건을 감사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중국에서 공부하면서 특히 어린 시절의 부족함에 감사했었다고요?
제가 중국으로 처음 건너간 시기는 34세 때였어요. 배움의 한을 풀기 위해 어렵다는 중국 의학 박사까지를 목표로 했어요. 남들은 결혼하고 취업해서 집도 있을 나이에 홀로 중국에서 난방 시설도 없고 공동 화장실을 쓰는 좁은 단칸방에서 생활하는 것은 남들이 볼 때 엄청난 고생이었죠. 하지만 저는 그 당시 진심으로 행복했었어요.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행복이었거든요. 남들이 큰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당연한 것들에서 고마움을 발견한 것이었죠.
또한, 파파스 창업 초기 때도 공부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아쉬움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집도 빼서 투자한 사업이었기 때문에 잘 곳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엄청난 공부량의 의학 수업 또한 사업과 병행하기에 결코 호락하지 않았죠. 심지어 지점이 하나둘 늘어가면서 38개에 이르자 사업 하나만 하기에도 벅찰 정도로 일이 많았죠. 하지만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가게에서 공부하고 잠자고 생활하면서 끝까지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어요. 시간이 부족해서 힘들다는 것은 행복한 고민이고 사치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때 제가 매일 생각했던 다짐이 있어요.
“내가 오늘 하루만 책을 덮고 잠을 잔다면, 나는 내일 또 조금만 힘들면 책을 펼치지 않고 잠을 잘 거다. 그리고 또 실패를 할 것이고 매일 이런 삶이 반복될 것이다. 결국,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만이라는 예외를 두지 말자!”
결국, 나이 50이 다되어서 목표했던 중의학 박사를 획득할 수 있었고 동시에 파파스 사업도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죠.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큰 꿈을 꾸고 있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특별한 꿈을 꾸며 특별한 길을 가세요. 꿈은 특별하게 꾸면서 행동은 보통 사람처럼 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보통 사람입니다.
특별한 길을 가기 위한 대표님만의 Tip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특별하게 가는 길은 얼마만큼이나 시간을 내가 더 특별히 만들어낼 것이냐, 즉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저의 성공은 제가 똑똑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제가 확보한 시간과 바꿔서 얻은 것이다. 보통 하루에 몇 시간 주무세요?란 질문에 대부분 6시간 혹은 7시간이라고 답해요. 저는 젊은 시절부터 50이 넘은 지금까지 매일 하루에 딱 4시간을 자요. 12시에 자서 4시에 일어나요.
이렇게 생활하면 남들이 6시간을 잔다고 가정할 때 하루에 두 시간씩 더 버는 거에요. 그런데 이렇게 한 달을 생활하면서 시간을 모으니 60시간이 되었고, 60시간이면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더라고요. 이 시간을 중국어 공부에 쏟았더니 의대 공부와 사업에 바쁜 와중에도 중국어를 마스터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다음 달에 또 공짜 60시간이 생기는 거에요. 이번에는 영어에 투자해보았어요. 1년 동안 이렇게 생활하니 남들보다 무려 720시간을 더 확보할 수 있었어요. 시간이 넘쳐나니깐 못할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부족한 전공 공부뿐만 아니라 영어 공부도 하고, 요리도 배우고, 그림도 배우고, 서예와 기타도 마스터했어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특별한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거야말로 이상한 사회이지 않을까요?
하루 4시간, 한 달 60시간, 일 년 720시간의 법칙이라고도 볼 수 있네요. 이렇게 잠을 줄이면서 수십 년째 생활하면 건강에 문제는 안 생길까요?
사람은 진화하는 능력이 있어요. 고산지대를 가면 처음에는 숨을 못 쉬고 토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하루 이틀이 지나고, 한 달만 지나면 뛰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환경에 적응해요. 진화한 것이죠. 잠을 적게 자도 아무런 건강에 문제가 안 생깁니다. 저는 오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불구, 아직까지 하루에 4시간씩 자지만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운동을 해서 더 건강해요. 잠을 적게 자도 문제없는 사람으로 자신을 진화시키세요. 처음 3개월만 꾹 참고 이겨내 보세요. 훌쩍 진화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거에요.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번 호가 글로벌 무대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한 특별 호이니만큼 그와 관련해 마지막 말을 해주고 싶어요. 우선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로 제대로 무장하고 세계로 나가라는 것이에요. 세계 시민, 세계적인 인재는 자신의 뿌리부터 굳건히 한 후에 다른 언어와 문화를 습득하고 이해해나가는 것이지 정체성 없이 남의 언어, 문화를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에요. 한국인으로서 마인드와 뿌리를 굳건히 한 후에는 자신 있게 세계 어디든 빈손으로 나가보세요.
세계 각지를 둘러보면 홀로 나가서 그 나라에서 성공한 한국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요. 한국인이 정말 우수하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사례는, 다른 민족들은 모두 여럿이 나가서 함께 똘똘 뭉치고 도우며 지역에 겨우 정착에 성공하는데, 한국인들은 모래알처럼 혈혈단신으로 가도 결국 성공해서 정착해낸다는 것이에요. 저는 그래서 한국인이 다이아몬드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고 또 빛을 낸다는 것이죠. 불확실함에 대해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빈손으로 나가서 세계를 경영하는 사람이 되세요. 특별한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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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꿈을 꾸며
특별한 길을 가세요
꿈은 특별하게 꾸면서
행동은 보통 사람처럼 한다면
당신은 영원히
보통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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