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캠프 멘토칼럼

[20호] 가능성의 기로에 선 너에게 쓰는 편지

가능성의 기로에 선 너에게 쓰는 편지 

 작가 김지희
Sealed Smile-Blooming.2012. ___ __. 72x60cm.jpg
긴 이야기를 못 했지만, 빈 찻잔을 만지며 네가 나에게 다 털어놓지 못했던 말들, 지금 네 어깨 위에 무겁게 내려앉은 불안감과 체념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 20대를 온통 걸고 매진했던 순간에도 마음 한 켠에는 그런 불안감이 완전히 지워진 적이 없었고, 오늘의 나 자신도 아직 완벽한 존재가 아닌 까닭이겠지. 그림이 좋아 예술학교를 거쳐 우리가 배운 건 그림밖에 없는데, 이제 곧 서른을 보는 너에게 지금 이 길이 버거울 때가 자주 찾아오는 것 같다. 개인전도 한번 못한 상황에서 계속 화가의 길을 지원을 해 줄 만큼 집안 형편도 안 되고,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고, 그만큼 그림에 의욕이 생기기보다는 다른 일에 기웃거리게 된다고 했지. 적당한 일 하면서 나이 들어 여유가 생기면 그때 화가의 길을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고. 지금 자리도 못 잡고 예쁘지도 않아서 좋은 남자와 연애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없다고. 고작 너보다 한두 해 더 살았다고, 너에게 조언이라는 걸 해줄 수 있는 위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개별적인 존재가 그렇듯 환경도, 가치관도, 마음의 강도도 다르고, 스무 살이 넘은 이상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존재일 테니까. 오늘 속 시원한 대안이나 할 수 있다는 위로를 기대했을 너에게, 다만 너의 마음에 닿을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어릴 적 한 번쯤 좋아하는 일로 근사하게 활동하는 네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었지. 어른이라는 문턱을 넘으며 망연히 좋아했던 일들이 현실적인 가치로 되돌아왔겠지만, 또한 그 멋진 삶을 사는 어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거야. 잘할 수 있는 일에서 꿈꿀 수 있는 최대한의 네 모습을 그려보렴. 남들이 말하는 성공보다는 이렇게만 된다면 네가 정말 네 삶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그런 그림. 무엇보다 꿈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은 결국 네가 그리던 모습에 가까워지게 된다.
돌아보면 자명한 사실은, 목표하는 모습에 다가갈 때는 늘 저항이라는 것이 따랐다는 거야. 새가 높이 날아오를 때도 저항이 필요하듯, 모든 인간의 성장에는 늘 어려운 과정이 따라오는 것 같다. 그 저항은 넘어지고 상처받는 순간일 수도,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쉬운 길 대신 어려운 일들을 굳이 택해야 하는 때나, 나른한 행복을 포기하고 새벽을 깨워야 하는 노력의 순간일 수도 있지. 하지만 늘 네가 만든 꿈에 가까워질 수 있는 유일한 길도 노력이고, 이루지 못하면 상처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큰 힘도 노력에 있다. 하고 싶지만, 환경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고 말하는 네가, 입시를 치른 이후 한 번쯤 네가 좋아하는 일에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만큼 능동적으로 미쳐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대학원을 갓 졸업할 무렵, 작가의 길을 가고 싶었지만 모든 게 막연했던 때가 종종 생각난다. 졸업과 동시에 독립해서 스스로 작업을 해나가고 싶은 생각에 미술잡지 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출근하기 전 새벽에 그림을 그리고 퇴근하고 또 새벽까지 그림을 그리면 주말도 없이 하루에 길어야 네 시간을 겨우 잘 수 있었지. 4년간 휴가는 모두 전시에 쓰고 가끔 친구와 차 한 잔도 하고 싶었지만, 그런 짧은 시간조차 허락되기 어려웠던 때. 몸은 피곤한데도, 하나씩 화판이 쌓여가고 그림 안에서 길이 보였던 순간들은 곧 희열이 되었어. 너를 감동시킬 수 있는 노력이라면, 분명 길이 보일 것이다. 그러니 망설이지 말고 네가 살고 싶은 삶을 위해 좀 더 인내하고 노력해보렴. 정직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늘 네가 바라는 목표와 열정 뒤에는 궁극적인 선한 목적과 가치관이 수반되길 바란다. 그 가치관 없이는 네가 숨이 차게 오르다 정신이 피폐해지거나 길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야.
그렇게 전진하던 어느 순간, 네가 바래왔던 소망들이 근사한 예복을 입고 하나씩 찾아오는 시점이 되었을 때, 상처 입을 날들도 있을지 모른다. 화려한 것들의 이면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기도 하니까. 네가 어렵게 성취한 것들을 쉽게 폄하해버리거나 상처를 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땐 한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다. 나는 내가 잘 모르는 누군가를 그렇게 지레 판단해버린 적은 없었는지, 그렇게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렴. 그렇게 너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상처에 따뜻한 연고를 바르듯이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적어도 네 삶을 꾸준히 동행해줄 진짜 네 사람들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예기치 않게 넘어지고 아픈 날엔 좌절을 정면으로 마주 보길, 열심히 달리다가 넘어지면, 더 많이 아플 수도 있을 테니까. 그 상황이 너를 무너지게 할 만큼 중요한 것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보렴. 대부분은 현실적으로 네 목을 조르는 일이 아닌 경우가 많을 거야. 그걸 직시하는 순간 성장하고 강해지는 것이란다.
그리고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네가 어느 날 네가 원하던 목표들을 이루어 갈 때.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보면 그것은 네가 잘나서 이루어진 것이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네 노력의 결과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너를 이끌어준 상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함께 너의 목표를 이루어 낸 거야, 그리고 행운마저도 너의 편이 되었기에 네가 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늘 감사해야 하고, 그 감사함이 바로 겸손함의 다른 모습이다.
혹여 조금 지칠 때면 높은 곳에 올라가 보렴. 나는 늘 자연적인 것을 찾는다. 지극히 도시적인 그림을 그리는 내가 자연적인 것에 취미가 있는 것도 아이러니하지? 몇 년 전 백두산 등반을 한 일이 있었는데, 악천후에 빗방울은 몸을 내리치듯 끊임없이 쏟아지고, 날은 쌀쌀했지. 백두산 정상을 향하는 산꼭대기에서 군락을 이루고 살아가는 꽃들이 있었다. 춥다고, 아프다고 악을 쓰는 일 없이 가녀린 허리를 일으켜 지당한 섭리대로 꽃을 피워내고, 환경에 묵묵히 순응하며 살아가고 있었지. 우리가 모두 자연의 일부이듯, 모든 가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과 처음부터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인정하는 법을 늘 자연으로부터 배우게 된다.
그리고 난 수수한 네 용모와 웃음이 늘 자연스럽고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콤플렉스였던 줄은 네가 오늘 말을 꺼내서 알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콤플렉스라는 것은 네가 콤플렉스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닌 것이다. 매 순간은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음에 침투하려 할 때, 긍정적인 생각을 짚는 것은 언제나 마음의 선택이다.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감을 가져 보렴. 네가 너를 사랑해야 타인도 너를 귀하게 여길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외모가 아닌 지혜와 인품이다. 책을 많이 읽고 마음을 넉넉하게 쓰며 향기롭게 익은 여자라면, 그런 너를 알아볼 수 있는 현명한 남자와 만날 수 있을 거야. 외모만을 보고 너를 판단해버릴 남자라면 차라리 만나지 않는 것이 낫다, 알다시피 여자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은 영원하지 않다. 대신 현명하게 상대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성장시켜 줄 수 있는 여자가 된다면, 너와 비슷한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야.
말이 참 길어졌지. 진정한 희열은 때론 널 힘들게 하는 저항을 감당하며, 비로소 일어서서 네가 원하는 그림을 그렸을 때에 다가오는 신의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것을 잃지 않길 바란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 너희들에게, 지희 언니가.
++

본 칼럼은 다양한 분야의 20대 리더들을 위한 Global Shapers Community 회원들의 연재 칼럼입니다. 세계경제포럼에서 만든 Global Shapers Community는 스위스 제네바 본부를 중심으로 전 세계 주요 도시에 허브를 두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 커뮤니티입니다.

 

kim jihee.jpg

 

화가 김지희 - 마이애미·뉴욕·퀼른·워싱턴·런던·도쿄·베이징 등 국내외에서 100여 회의 전시를 가졌으며 2011년 청작미술상을 수상했다. 화장품 브랜드 미샤와 한정판 라인 출시, 소녀시대 의상 콜라보레이션 등 갤러리의 문턱을 넘어 문화 전반에서 관객과 만났다. 주요 저서로는 <스물아홉 김지희, 그림처럼 사는>, <스물아홉 김지희, 삶처럼 그린>(2012) 등이 있다.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