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19호] 슬레이트를 치다-전용덕 감독님

슬레이트를 치다

레이아웃 총괄 전용덕 감독님

인터뷰 권동혁  글 배상진  사진 임범식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지! 아무리 재미있는 얘기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천지 차이라고. 쿵푸팬더, 슈렉 포에버 그리고 크루즈 패밀리까지.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더 재미있게 보여주는 일을 맡은 사람!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의 숨은 공신, 레이아웃 총괄 전용덕 감독님의 이야기보따리를 한 번 풀어볼까? 레디~ 액션!

 

 

 

과거가 모여 만든 현재

감독님은 어린 시절 어떤 학생이었나요?

어렸을 때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학생이었어요. 만화방을 간다든가, TV를 보는 게 흔치 않은 시절이었거든요. 그래서 혼자 그림도 그리고 만화도 그렸어요. 늘 공부는 뒷전이었고, 학교 다니면서 받은 상이라고는 개근상과 미술 실기대회 상밖에 없어요.

 

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어렸을 때는 그저 좋아서 했던 것이죠. 그러다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서 예고에 진학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3개월 정도 선화예고 입시를 준비했는데 안타깝게도 떨어졌죠.

 

어떻게 보면 이른 나이에 좌절을 경험하셨는데요?

그렇죠. 하지만 꿈을 접은 건 아니었죠. 미술에 계속 꿈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입시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단지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어서 그때는 순수미술 쪽을 진로로 생각했었죠.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어요. 미래에 생활의 안정을 위해서 돈벌이가 될 수 있는 디자인 쪽으로 가라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절충을 한 것이 디자인 분야 중에서도 순수미술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되었던 일러스트레이션 쪽을 공부해 보기로 했죠.

 

그래서 산업디자인과로 진학하게 되신 거군요?

네, 제가 원했던 일러스트레이션은 시각 디자인 분야에서 다뤘고, 제가 진학한 서울시립대학교에서는 산업디자인과 내에 시각디자인 전공이 있었으니까요. 제 합격 소식에 누구보다 부모님께서 기뻐하셨어요. 대학도 못 갈 성적이라 기대도 안 했었는데 놀랍게도 장학금까지 받으면서 학교에 다니게 되었으니까요.

 

학교 생활은 재미있으셨나요?

대학생활은 1학년 때부터 정말 재미있었어요. 교양 과목은 교양 과목대로, 실기 과목은 실기 과목대로 하는 것마다 재미있더라고요. 대학 때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해서 동화책을 만들거나, 작가 생활을 해보자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렇게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는데, 처음으로 문제가 생겼어요. 전역을 몇 달 앞두고 사고가 있었거든요. 청소하다가 싸리 빗자루가 눈을 관통하는 사고를 당했는데 그 사고로 한쪽 눈이 거의 실명에 가까운 상태가 되었죠.

 

미술 하는 사람이 눈을 다치는 건 치명적인 사고가 아닌가요?

그랬죠. 정말 원망도 많이 했어요. 왜 이렇게 된 거냐고. 하지만 제 장점 중의 하나가 단순하다는 건데요.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지만 두 눈으로 보는 사람보다 더 열심히 보겠다고 생각했고, 하나의 사물을 관찰할 때도 두 눈으로 보는 사람보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점차 지나고 나니 지금은 그때의 그 사고조차도 오늘의 나를 만드는데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들어요.

 

 

꿈을 향한 긴 여정

멋진 발상의 전환이네요. 그런데 졸업을 한 후에 처음으로 간 직장이 광고회사.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처음의 꿈과는 조금 다른데요?

대학 내내 일러스트레이터를 향한 꿈을 키웠어요. 그러다가 대학 3학년 때 광고회사 인턴으로 일한 적이 있었죠. 그런데 우리가 맡은 프로젝트 중에 일러스트레이션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정말 우연한 기회로 꿈에도 그리던 일러스트 전문가와 협업을 통해 만날 기회가 생긴 거죠. 그런데 제가 만났던 일러스트 작가의 모습은 제가 꿈꿔왔던 모습과 달랐어요. 기왕 이런 바에야 광고회사 디자이너가 되는 게 더 낫겠다 싶어, 졸업 후에 광고회사 디자이너로 취업하게 되었죠.

 

광고회사 생활은 어떠셨나요?

다들 광고회사 일이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저는 즐겁게 일했던 것 같아요. 어딜 가든 오락부장 역할을 도맡아 했는데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주변이 늘 즐거운 편이었어요. 점심시간에는 재미있는 영화나 영상을 함께 보는 분위기를 주동하기도 하고요.

 

들어보면 매우 즐겁게 회사 생활을 하신 것 같은데, 갑작스레 회사를 그만두고 미국 유학을 떠나신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이것도 계기는 조금 우스워요. 저와 정말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친구가 있는데요. 저와 대학까지 비슷한 전공으로 함께 공부한 친구예요. 그 친구는 프리랜서로 일하던 친구였는데 갑자기 저를 찾아와 “용덕아, 나 중대한 결심을 했어.”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뭔가 들어봤더니, 미국에 가서 공부도 더 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거였죠. 그때 저는 머리를 한 대 쿵 얻어 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죠. 비록 큰 광고회사에 다니고 있었지만 내 5년 후, 10년 후의 모습이 내가 바라던 모습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하루, 이틀, 사흘 정말 압축적으로 그것만 생각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덥석 사표를 쓰고 회사를 나섰죠.

 

갑자기 내린 결정치고는 과감하네요. 광고회사를 벗어난 미래는 어떤 그림이었나요?

 

직장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향할 땐 뭐라도 배워와서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러던 중에 지도 교수님을 찾아뵈었죠. 그리고 교수님을 만나 유학을 다녀와서 디자인과 교수가 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때 교수님 말씀이 누구나 자기를 꾸밀 줄 알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니, 요즘에는 전 국민이 디자이너라고, 그냥 디자인만으로는 어려울 거라며 앞으로는 정지된 그림보다는 움직이는 영상에 비전이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만화를 좋아했는데, 움직이는 영상이라니 이거다 싶더라고요.

 

 

 

머나먼 이국에서 기회를 열다

우여곡절 끝에 건너간 미국. 적응하기 어렵진 않으셨나요?

회사를 그만둔 것이 대학원 유학을 위해서였는데 갑자기 내린 결정이다 보니 준비된 게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건너가서 1년간 어학연수를 하면서 필요한 준비를 하기로 했죠. 사실 성격이 단순하고 낙천적이었던 터라 힘들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오히려 즐겼죠. 당시만 해도 토플 응시료가 지금처럼 비싸지 않아서 매달 토플을 봤는데요. 공부는 안 하면서 토플 보기 전날에는 꼭 의식처럼 축하주를 마시곤 했지요. 그러면서도 매달 토플은 빼먹지 않고 응시하니 제 별명이 미스터 마라톤 토플이었어요. 계속해서 도전한 덕분에 결국 11개월만에 550 만점에 530점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긴 했지만요(웃음).

 

오, 그래도 영어를 어느 정도 하셨나 봐요.

대학교 때 저는 외국에 나가 살 계획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영어와는 담을 쌓고 살았어요. 대학원에 갔다고 나아졌을 리가 없죠. 교정을 거닐다가 마주친 사슴을 교수님에게 설명하는데 “Deer”가 생각이 안 나서 “밤비(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사슴 캐릭터)”를 봤다고 할 지경이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 아침. 여느 때처럼 TV를 켜놓고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들은 TV 소리에 웃으면서 깼어요. 그땐 정말 내가 웃었다는 사실에 놀랐어요. 어떤 공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실력이 느는 건 절대 사선으로 가지 않더라고요. 당장 노력의 결과가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꾸준히 시간과 노력이 쌓이면 계단식으로 점프하는 시점이 있는 것 같아요.

 

영어도 영어였지만 새로운 분야의 공부는 어렵지 않으셨나요?

그거야 말할 것도 없죠.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서 아주 단순한 캐릭터를 만드는 일 하나도 쉬운 게 아니었어요. 스토리를 만들어 그에 따라 움직이는 영상을 만드는 과제가 있었는데, 제 과제는 두 캐릭터가 달려와 부딪히는 게 끝이었죠. 캐릭터를 만들고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캐릭터 움직임을 만들다 보면 처음에 구상한 스토리가 뭔지 새하얗게 잊을 정도였거든요.

 

시작은 그렇지만 지금은 드림웍스의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졸업하고 바로 가신 곳이 드림웍스가 아니었네요?

네. 처음부터 월드 디즈니, 드림웍스, 픽사 같은 대형 제작사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드림웍스는 저의 네 번째 직장이에요.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 오륙십 군데 정도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보냈는데 그때는 연락 오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시카고의 한 회사에서 레이아웃 아티스트로 근무하기 시작했는데요. 2년간 정말 열심히 일했지만, 회사가 대박 작품을 만들지는 못했어요. 그리고 회사는 경영상황 악화로 안타깝게도 부도가 나버렸죠.그리고 그때는 제 아들이 태어난 지 1개월이 채 안 되었을 때였고요.

 

상상만 해도 눈앞이 캄캄해졌을 텐데요. 한국에 돌아오실 생각은 안 하셨나요?

왜 안 했겠어요. 그런데 제가 미국에 건너갈 때의 꿈이, 후배들에게 뭔가 가르칠 수 있는 경력을 쌓고 돌아오는 건데. 거기서 그만두기엔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다시 직장을 구해보기로 했죠. 그래도 일하는 동안 새롭게 만든 포트폴리오가 있으니 그걸로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어요. 그래서 다시 뉴욕의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한 달 정도 뒤부터 출근하기로 예정되었죠. 그렇게 한 보름쯤 지났어요. 그런데 문득 궁금하더라고요. 이력서는 여기저기 넣어놓았는데 날 찾는 곳이 또 더 없을까 싶었죠. 집에서는 인터넷이 안 돼서 메일 확인을 못했거든요. 왠지 들뜬 마음을 안고 시립 도서관에 가서 확인을 하는데 메일이 몇 통 없었어요.좀 실망스럽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스팸 메일함까지 뒤졌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스팸 메일함에 드림웍스의 인사담당자가 보낸 메일이 있었죠.

 

기가 막힌 운이네요.

네. 보낸 지 일주일쯤 지난 메일이었는데, 내 포트폴리오를 보고 이래저래 수소문했는데 도저히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메일을 보면 꼭 연락을 달라고 쓰여 있었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했는데 바로 면접이 잡혔고, 면접에서 사정을 설명했어요. 빨리 결정이 안 되면 나는 다른 회사에 갈 수밖에 없다고요. 그리고 정말 놀라운 속도로 함께 일할 기회가 열렸어요. 꿈에도 그리던 드림웍스에서 일하게 된 거죠.

 

 

 

DREAM WORKS. 그리고 새로운 꿈.

드림웍스 영화만큼이나 극적인 스토린데요? 꿈의 직장에서 일하는 것. 어떤가요?

드림웍스도 애니메이션 제작사 중에서는 대기업에 속하는데요. 대기업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기계적이고 시스템적인 어떤 것들을 많이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정말 여기는 인간적인 회사예요. 다양한 팀이 있고, 하나의 일을 하려면 여러 팀이 함께 모여서 협업을 해야 하는데 한 사람이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분야에 발을 걸치고 있어요. 일하기 전에 인간적인 관계가 돈독해서 실수에 대해서도 서로 관대한 편이죠. 또 업무 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여가를 즐기는 회사 문화이고요.

 

그런 회사 문화가 드림웍스가 만드는 이야기 밑에 깔린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5월에 개봉한 크루즈 패밀리에서도 가족의 가치가 정말 큰 감동을 주더라고요.

‘가족’은 전 세계 누구나 공감하고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소재가 아닌가 싶어요.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도 전통에 얽매이지만, 가족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바보 아빠, 하루가 멀다고 치고받으며 싸우는 남매, 호기심 많은 딸 등 어느 가족에나 있는 현실감 있는 캐릭터를 찾아내려 노력했고요.

 

다소 늦은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레이아웃 감독이라는 역할이 저와 독자들에게는 조금 생소한데 어떤 일을 하신 건가요?

아, 레이아웃 감독은 실사영화로 따지면 촬영감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애니메이션도 여러분이 보면 알겠지만, 캐릭터의 움직임을 촬영하는 것처럼 컴퓨터 화면 상에 세트를 꾸미고 현실감 있게 화면을 구성하죠. 이번 영화는 특히 선사시대 가족의 모험을 다룬 만큼 관객들이 주인공과 함께 여행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하는데 초점을 두었어요.

 

그래서 두 시간 동안 정신없이 웃다가 울다가 하게 되는 거군요. 지금 일을 하시면서 갖고 계신 꿈이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제 꿈은 확실해요. 그건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는 것이죠. 제 나이 오십이 되기 전에요. 그리고 아카데미 어워드 장편 부문에서 수상하는 감독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죠. 꼭 이루어낼 거예요.

 

벌써 그날이 기다려집니다. 여러 번 기회를 따라 인생 항로를 수정해 오셨는데요. 지금도 미래를 고민 중인 학생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요?

살면서 명확한 목표나 꿈을 갖고 있다는 건 좋은 거예요. 그러나 상황이 변하고 환경이 바뀌면 그 꿈과 목표도 달라질 수 있죠. 처음 이거라고 결정했던 꿈과 목표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본인의 생각이나 고민이 얕았다거나 자신을 스스로 가벼운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꿈도 목표도 재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니까요. 목표를 보고 달려가다가도 내가 잘할 수 있고 도움이 되는 기회를 잡는다면, 얼마든지 열린 기회를 따라갈 수 있는 거예요. 그것도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죠.

 

중요한 말씀이네요.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행복하세요.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요? 뻔한 이야기 같지만, 적성에 맞는 일을 찾으면 행복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보다 내가 행복해야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할 수 있고요. 성공하는 건 그다음이에요. 열심히 한다면 성공은 뒤따라 오거든요. 천재가 아닌 이상 열심히 하는 사람은 따라갈 수가 없어요. 중고등학교 시절, 꼭 원하는 일을 찾아 행복해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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