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캠프 멘토칼럼

[18호] 좋은 놈 나쁜 놈 그리고 중독

좋은 놈 나쁜 놈 그리고 중독

제3화 중독이란?

글 권동혁, 배상진

 

어느 설문조사를 보면 청소년의 고민거리 1위가 ‘중독’이라 나온다. 인터넷 중독, 휴대전화 중독, 음란물 중독, 게임 중독 등. 일에 몰두하는 남자의 모습은 매력적이지 않냐고? 그건 자신과 자신의 꿈을 위해 몰입할 때이지, 어떤 것에 ‘중독’된 모습은 매력적이기보다 걱정된다! 그래~서 이번 달은 ‘좋은 놈, 나쁜 놈 그리고 중독’

 

 

권동혁.jpg

우리가 가진 삶의 방식 중

한 가지만 옳다고 

믿는 것, 그리고 거기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중독이라 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삶이 편해지면서 우리는 이전에 없던 많은 것을 누리면서 산다. 더 빨리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각종 SNS와 기기들을 이용해 손쉽게 소통하고, 인터넷과 각종 강의를 활용해 뭐든 쉽게 배우고 따라 할 수 있다.

 

더 많은 선택지, 그리고 권리. 또 그로 인해 얻어지는 편리와 효율. 하지만 지금의 시대에서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행복까지 이야기하면 너무 거창해지니 질문을 살짝 바꿔보자. 너는 SNS를 통해 사람들과 정말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있나? 수많은 인터넷을 통해 뭔가를 알게 되면서 똑똑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나?

 

선택권이 많아진 세상에 살면서 우리가 포기하고 있는 것 한 가지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가진 선택의 자유다. 우리를 편리하게 하고 있다고 말하는 기기들과 방식들이 우리는 편리함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니까. 더 빠른 처리속도, 더 신기한 기능의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는 동안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의 귀중한 시간을 헌납하는 줄도 모르는 것처럼.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통의 방법이, 학습의 방법이, 이동 수단이, 또는 삶의 방식이 한 가지만 옳다고 믿게 되는 것, 그리고 절대적으로 거기에 의존하는 것.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중독이라고 한다.

 

사실 우리는 중독이라는 단어에 상당히 한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담배 중독, 알코올 중독, 섹스 중독, 마약 중독, 도박 중독. 그런데 한심해 보이기 짝이 없는 모습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함정. 저런 심각해 보이는 중독 말고 스마트폰 중독, 인터넷 중독 정도에서는 자유롭나?

 

그렇다면 점수만 네 공부의 결과라 생각하는 점수 중독, 한 명 더 제쳐야 속이 시원한 등수 중독, 꿈만 있으면 다 잘 될 거라 믿는 꿈 중독, 잠 잘 시간이 부족해 힘들다고 믿는 혹은 밤에 잠을 덜 자면 더 열심히 공부한 거라 믿는 잠 중독, 나는 위로 받아 마땅한 상황이라고 시답잖은 문제에 파묻혀 사는 위로 중독, 좀 해보다가는 어차피 안 될 거였다고 뭐든 쉽게 놓아버리는 포기 중독, 적당한 합리화 중독, 엄마아빠 없으면 밥 한끼 제대로 못 먹는 부모 중독. 뭔가 독한 말을 들어야 의지가 다져지는 독설 중독은 어떨까?

 

그래. 저런데 적당히 중독되어 사는 게 뭐가 문제냐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적당히 어떤 것에 중독되어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지금 네가 행복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네 삶이 네 삶 같지 않다고 느낀다면 네가 어디에 의존하고 있는지, 어떤 논리에 세뇌되어 있는지를 찾아 나서라. 네 인생을 조금만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고, 그로써 네 인생에서 너의 의지로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많아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배상진.jpg

부모님을 사랑하라.

네 주변도 사랑하고. 

그러나 그보다 너를 더 사랑하라

 

청소년 시절을 돌아보면 그때 나도 PC게임에 미쳐있었던 적이 있어.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아. 친구들과 길드(guild, 게임에서의 길드는 소속 팀과 유사한 의미)를 만들어 게임에 한창 빠져있었지. 그래도 중독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잘 하지 않았으니까.

 

중독이라고 느낀 것은 고2때. 한창 학업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예민해지던 시기에 게임은 왜 그리 재미있던지. 그때는 공부 빼고는 다 재미있었던 것 같아. 늦은 시간까지 야자를 하고 눈꺼풀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무거운 시간에도 컴퓨터를 켜는 굳은 의지를 보였었지. 주말찬스가 있는 날이면 내 한계가 어딘지 실험이라도 하듯 밤을 새며 게임을 했었던 것 같아.

 

어쩌면 나는 두려웠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들통나 버릴까 봐.

 

세상에서 내가 최곤 줄 아는 엄마, 아빠.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 ‘좋은 사람’이고 ‘모범적인 학생’이라는 기대. 공부에 재능이 있고, 좋은 대학에 가서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두려웠던 것일지도. 사실은 내가 별 것 아닌 사람이라는 게 들통나 버릴까 봐 더 게임에 열을 올리고 현실을 피하려 했던 것일지도 몰라.

 

그때의 나는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분명히 알지만, ‘무엇을 원하는지’는 분명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것 같아. 나쁘지는 않았지만, 행복하지도 않았던 삶. 그래서 항상 어딘가에 몰입하고 싶고, 갈증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공부가 내 인생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 내 꿈을 위해 지금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기에 공부가 아닌 다른 것에 몰입하기를 원했던 것인지도 몰라.

 

내가 느꼈던 압박과 상관없이 우리 황여사는 내 공부에 간섭하지 않는 스타일이었어. 떨어진 성적표를 들고 집에 돌아왔을 때 황여사께서 나를 부르셨지. 짜증부터 났어. 평소엔 잔소리도 안 하더니 성적이 떨어지니 잔소리를 하시려는 거로 생각했지. 그런데 황여사는 차분하게 나에게 이야기했어.

 

‘엄마는 엄마 자신보다 우리 아들을 더 사랑해.

그런데 엄마는, 우리 아들이 엄마, 아빠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부모님을 생각하기보다 자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그런 사람.’

 

울컥하는 마음에 정신 없이 울었던 것 같아. 오늘날을 살아가는 고딩들의 책가방은 주변의 시선, 부모의 기대 등으로 너무나도 무거워.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는데 일단 부모님을 위해, 이 사회를 위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치고,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그래서 지금 너도 끊을 수 없는 어딘가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비록 너의 엄마가 되어줄 수는 없지만, 우리 황여사의 마음을 네 부모님도 이해하시리라 믿으며 대신 전한다.

 

‘부모님을 사랑하라. 네 주변도 사랑하고. 그러나 그보다 더 너를 사랑하라.’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