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캠프 멘토칼럼

[17호] 좋은놈 나쁜놈 그리고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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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밥을 먹고 함께 추억도 쌓지만, 시험 기간이나 수행평가 기간만 되면 알게 모르게 느껴지는 경쟁심. 경쟁이 서로의 발전을 위한 약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자신이 한심하다고 느껴지게 만드는 독약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달은 ‘좋은 놈, 나쁜 놈, 그리고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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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어놓은 
한계와 싸우고
마의 10초 벽을 깨라

 

 
패배자. 교실에서 눈에 레이저를 번쩍 번쩍 내뿜고, 중요한 부분을 빼고 노트 필기를 보여주며, 네가 2등급 받은 모의고사, 3등급 받아서 처져버린 친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묘하게 쾌감을 느끼는 너에게 어울리는 말은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다.
네 눈에 보이는 세계가 눈 앞의 교실이 전부라는 거. 그래 좀 잘한다 싶은 녀석들이나 교실을 벗어나 전교 등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쯤 이해한다. 의식을 안 하려 해도 나랑 비슷했던 친구가 갑자기 성적이 오르면 신경 쓰이고, 쉬는 시간 내내 복도를 투우장 소처럼 누비다 들어왔는데 엉덩이 진득이 붙이고 영어 단어장이라도 쓰고 있는 친구를 보면 화가 치미는 것도 이해한다. 그런데 너. 정말 너에게 경쟁이 그런 거라면 그렇게 유치한 짓을 계속 하고 싶으냐? 그런 걸 경쟁이란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지 마라. 경쟁이란 어떤 것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의 노력과 투쟁이지, 그런 싸구려 ‘시기’나 ‘우월감’을 포장하는 말이 아니다.
이제껏 우리들의 경쟁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게 자본주의의 논리라는 둥, 자연의 법칙이라는 둥. 경쟁 체제에 익숙해져야 할 이유를 백만 개 갖고 와서 우리를 설득하는 사람도, 경쟁이 가진 수많은 부작용을 열거하며 당장 경쟁을 그만두자고 외치는 사람도. 결국은 우리가 경쟁을 피할 뾰족한 방안이 없다는 게 현실인 것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인간이 하는 스포츠 중 가장 원초적인 경쟁인 육상에서는 사람이 100m를 10초에 주파할 수 없다는 이른바 “마의 10초대 벽”이라는 게 존재했다. 스포츠 학자들은 당시 인간이 낼 수 있는 최고의 기록이 10초대라고 주장했고, 실제로도 그러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1968년 열린 국립육상대회와 멕시코 올림픽에서 짐 하인스가 9.9초 대의 기록으로 들어오면서 완전히 깨졌다. 한 번 불가능의 벽이 깨지자 10초 벽을 넘는 선수들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우사인 볼트를 비롯한 선수들은 이제 9.5 초 대의 기록에서 경쟁하고 있다.
 
지금 네가 하는 경쟁은 무엇을 위해 하는 경쟁인가? 네가 승리해서 얻었다고 하는 것은 결과로써 충분한 가치가 있나? 너도 모르게 너를 가두고 있는 마의 10초대 벽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 어쩌면 너는 10초대 벽을 넘어선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 10초 대의 벽 안에서만 경쟁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경쟁을 피해 살 수 없는 너에게 제안한다. 그러면 이제 네가 너의 경쟁의 품격을 끌어올려 보는 건 어떨까? 고작 경쟁자랍시고 옆 자리 앉은 지은이에게 노트필기를 보여주니 마니 싸우지 말고, 전교 1등 태훈이가 배탈 났을 때 히죽히죽 웃지도 말고. 네가 그어놓은 한계와 싸우고, 마의 10초 벽을 깨보는 건 어떨지 말이다. 마의 10초대 벽을 깬 짐 하인스는 그것으로 육상의 격을 끌어 올렸다. 부디 너의 싸울 상대가 얼굴 마주하는 친구에서 그치지 않고, 이 아니라, 너의 꿈을 이루는 길에 부딪히게 될 세상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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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가치와 삶의 목적을

 다른 이와 비교하려 하지 말고,

 너의 길을 가면 돼

 

 
 
경쟁은 같은 목적에 대하여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룬다는 뜻.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경쟁이라 느껴질 수도 있고, 경쟁이 아니라고 느낄 수도 있다는 말이지. 먼저, ‘점수’와 ‘등수’라는 숫자를 목적으로 삼는다면 너와 함께 밥을 먹고, 추억을 쌓는 친구는 분명 경쟁자야. 똑같은 점수와 등수를 얻지 않는 한 누군가는 앞서고, 누군가는 뒤처지게 될 테니까.
하지만 여기에 조금만 더 목적을 넓게 생각해 봐. ‘더 높은 숫자’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입시 성공’이겠지? 단순히 친구에게 이기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입시라고 목적을 확대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져. 일단 내가 원하는 대학과 학과와 친구가 원하는 그것은 다를 가능성이 커. 그리고 입시의 특성상 ‘숫자’와 ‘속도’가 중요하지 않아. 커트라인을 제시간에 통과했는가 하지 못했는가가 중요한 거지.
 
‘물은 100℃가 되기 전에는 끓지 않고, 
100℃가 된 후에는 온도가 더 올라가지 않는다. 입시도 마찬가지.’
 
커트라인을 먼저 통과한 친구가 승리했다고 할 수 있을까? 입시라는 뚜껑을 열기 전에 친구도 나도 100℃에 도달하면 돼. 지금 친구는 90℃고, 나는 10℃라고 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 90℃든 10℃든 물이 끓지 않는다는 사실은 같아. 조금 더 뜨거운 상태라고 저 물은 반드시 끓을 거라고 말할 수 없어. 지속적으로 열을 가하지 않는다면 금방 식게 될 테니까. 입시란 뚜껑을 열었을 때 친구도 너도 100℃로 펄펄 끓고 있을 수 있도록 ‘지금의 온도’를 비교하기보다 ‘열’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조금 더 목적의 개념을 넓혀보자. 인생의 목적은 대학인가? 행복하게 살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목적이지 않아? 원하는 대학, 학과에 진학한다고 행복한 삶과 즐거운 직업이 보장되지는 않아. 그러니 스스로 한번 물어보자.
나의 행복과 즐거움이라는 목적에서, 친구는 이겨야 하는 경쟁자인가?
누구나 각자 삶의 목적이 있고, 가치를 지니고 있어. 그것을 단순히 ‘숫자’로 비교하여 누가 승리자니 누가 패배자니 할 수는 없지. 더 높은 숫자를 얻었다고 행복한 삶, 즐거운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냐. 게다가 ‘나 혼자’ 잘나서 이룰 수도 없어. 소중한 ‘내 사람들’과 함께 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지.
너의 가치와 삶의 목적을 다른 이와 비교하려 하지 말고, 너의 길을 가면 돼. 누군가 너에게 왜 뒤처지고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있어. 다만, 조금 느릴 뿐이야. 그래도 완주할 수 있어.” 라고 대답하길.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너의 가치를 존중한다. 네가 존중받아야 할 만큼 스스로 존중해주길 바라며. MODU는 항상 너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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