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직업인 인터뷰

[16호] 붓을들다 – 캘리그라퍼

 

 

광화문 교보생명의 글판, 쿠크다스의 독도 패키지, 드라마 ‘해를 품은 달’ 타이틀. 이것들의 공통점은? 바로 캘리그라피. 아름다운 글귀에 감성이 깃든 서체는 상품을 더욱 멋스럽게 만든다. 캘리그라피는 일상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지만 캘리그라퍼라는 직업은 아직 조금 낯설다. 글씨는 사람을 닮아 표정이 담겨 있다는 그녀, 캘리그라퍼 김상희 님을 만났다.

 

 

감성과 개성이 있는 캘리그라피

  

반갑습니다. MODU 독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신촌‘모노디’에서 캘리그라피 강의를 하는 김상희입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과자, 크라운 쿠크다스의 독도 패키지, 파리바게트 합격기원 선물세트 패키지 등에 들어가는 캘리그라피를 디자인했어요.

 

캘리그라피라는 말이 생소하게 느껴지는데요, 캘리그라퍼는 어떤 일을 하나요? 

캘리그라피는 글씨를 손으로 아름답게 쓰는 것을 말해요. 많은 사람이 글의 내용과 글씨의 느낌에 공감할 수 있게 문자로써 표현하는 것이 캘리그라퍼의 일이에요. 즉, 감성과 개성을 글자라는 이미지에 담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죠. 작품 요청이 들어오면 의뢰인이 요구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시장 상황과 경쟁사의 자료를 수집해요. 자료를 바탕으로 글씨의 콘셉트를 잡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안을 만들어요. 선별작업을 거쳐 컴퓨터 작업으로 조형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일을 합니다. 

  

단순히 글씨를 쓰는 일이 아니었군요. 그럼 캘리그라퍼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반화되어 있진 않아요. 캘리그라퍼가 강사로 있는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캘리그라퍼는 꾸준한 작품 활동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해요. 캘리그라피 전시회에 참여한다든지, 개인 블로그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있어요. 저도 블로그를 통해 의뢰를 많이 받아요. 이런 방법을 통해 캘리그라피 시장에서 영역을 확대해 나갑니다. 또한 기업의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캘리그라피를 만들기도 해요. 저도 처음에는 온라인 광고 디자이너였어요. 캘리그라피를 접하면서 저랑 잘 맞는 일이란 걸 깨닫고 뒤늦게 배우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실력을 인정받아 지금은 학원에서 캘리그라피를 가르치면서 개인적인 작품 활동도 하고 있어요. 

  

캘리그라퍼가 되기 위해 전공하면 유리한 학과가 혹시 있나요?

서예를 전공한 사람이 많아요. 붓글씨를 캘리그라피라 여기기도 하고요. 서예를 전공하는 것이 도구를 다루는 부분이나 정성 들여 글씨를 쓴다는 태도에서는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서예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아요. 오히려 디자인적인 감각을 살릴 수 있는 디자인계열, 제품의 개성과 감성을 잘 파악할 수 있는 경영학, 소비자나 사회를 잘 분석할 수 있는 사회학이나 심리학도 도움돼요. 저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감성과 개성을 글자라는 이미지에

 담아내는 일을 하는 사람이죠.”

 

  

그저 예쁜 글씨가 아닌 기획된 디자인

 

캘리그라퍼들은 주로 붓글씨를 쓰는 것 같던데, 왜 오랜 시간을 서예에 투자하면 안 되나요?

서예와 캘리그라피는 손으로 글씨를 쓴다는 것이 공통점일 뿐 엄연히 다른 작업이에요. 누가 만족하는 작업이냐에 대한 것에서 차이가 나죠. 서예는 스스로 만족하는 작업이고, 캘리그라피는 작품을 요청한 의뢰인과 캘리그라퍼 모두가 공감해야 하는 글씨예요. 나는 만족해도 의뢰인이 원하는 글씨가 아니라면 세상에 나오지 못하겠죠. 캘리그라퍼는 의뢰인이 요구하는 콘셉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붓글씨’를 잘 쓰는 게 다가 아니므로 캘리그라퍼가 되기 위해 서예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폰트는 어때요. 다양한 폰트가 나와 있으니 따로 디자인할 필요 없이 콘셉트대로 고르면 되지 않나요?

폰트처럼 기계화된 활자는 규칙적이고 표정이 없어요. 논리적인 글을 전달할 땐 폰트가 효과적이죠. 반면 캘리그라피는 불규칙적이고 표정이 살아 있어요. 캘리그라피 안에 담고자 하는 감성을 넣을 수 있는 거죠. 콘셉트가 정확히 일치한다면 캘리그라피는 폰트보다 완성도 높은 디자인으로 나올 수 있어요. 기획된 의도대로 글씨를 쓰기 때문에 폰트와는 달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캘리그라피가 탄생하는 거죠.

  

단 하나뿐인 캘리그라피라고는 하지만 비슷한 서체가 많아서 구별하기 어렵던데, 내 글씨를 알아보는 방법이 있나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글의 폭이 달라요.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쓰는 글씨는 폭의 차이가 있어요. 오래 글을 써 온 사람에게는 필력이 있어서 글씨에 깊이가 있어요. 한 획 한 획 흘러가는 붓길에도 차이가 있죠. 단번에 내 글씨를 알아보는 특별한 방법은 없어요. 심지어 이틀 전에 쓴 글씨를 잊어버릴 때도 있거든요. 하지만 붓길이나 글의 폭을 비교해 보면 누가 쓴 글씨인지 알 수 있겠죠. 

  

쿠크다스 패키지부터 공연 타이틀까지 다양한 작품을 하셨잖아요.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제 글씨는 남성적인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너무 귀엽거나 여성스러운 글씨를 요구하면 일단 거절해요. 너무 낮은 단가를 부를 때도 정중히 거절합니다. 낮은 가격으로 일을 하게 되면 나중에 시작한 사람들은 더 낮은 단가로 일을 해야 하잖아요. 차라리 돈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대신 다음번엔 합당한 가격을 책정하자고 요구해요. 물론 프로젝트가 정말 마음에 들거나‘사랑의 열매’처럼 좋은 취지라면 기꺼이 재능기부를 하죠.

  

마음에 드는 프로젝트라도 막상 작품 구상에 들어가면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있잖아요. 혹시 캘리그라피를 만들 때 영감을 받는 비법이 있나요?

독특하고 다양하게 작품을 디자인하고 싶은데 구상이 잘 안 될 때가 있어요. 저만의 비법인데 그럴 때는 초심으로 돌아가 선 긋기를 해요. 선 긋기는 캘리그라피를 배울 때 가장 기초가 되는 공부예요. 가볍게 워밍업을 하다 보면 그때 영감이 딱 떠오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좋은 작품이 나온답니다.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제품과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는지, 어떤 콘셉트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작품 의뢰가 들어오면 캘리그라피가 어디에 들어가는지, 의뢰인이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수시로 의논해요. 글씨도 가로로 들어가는지 세로로 들어가는지에 따라 느낌이 달라서 디자인도 달라지거든요. 특히 캘리그라피가 들어갈 상품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가 중요해요. 예를 들어 제과 패키지에 들어간다면 미리 상자의 디자인, 색, 소재 등을 확인해요. 그 안에 캘리그라피가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지 구상하죠. 글씨만 봐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실제 상품 디자인에 캘리그라피를 넣어서 제작을 해보기도 하죠. 전체적인 조화를 확인해 상품과 가장 잘 어울리는 글씨를 선택해요. 캘리그라피는 단순히 예쁜 글씨가 아니라 콘셉트가 명확한 디자인이랍니다. 

 

 

그림 같은 글씨에 도전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데, 캘리그라퍼가 될 수 있는 자질을 하나 꼽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창의력이에요. 좋은 획이 나오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요. 창의력이 풍부하면 다양한 획을 시도할 수 있고, 좋은 획이 나오기까지 시간을 단축할 수 있죠. 중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창의력이 풍부하고 사고가 열려 있는 학생이었어요. 나이는 어리지만 여러 학생 중 단연 눈에 띄었어요. 창의력은 좋은 캘리그라퍼가 될 수 있는지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예요. 

  

어떤 도구로 작업하세요?

돌, 나뭇가지, 나무젓가락, 칫솔, 수세미, 빨대 등 다양한 도구로 글을 쓸 수 있어요. 그래도 표현력이 가장 풍부한 붓을 많이 사용해요. 때로는 도구 외에도 종이에 변화를 줍니다. 주로 쓰는 화선지가 아닌 흡수가 좋은 판화지나 매끈한 A4용지를 쓰기도 하고, 파지나 헝겊, 나무에도 글을 쓰기도 해요. 종이나 도구에 변화를 주면 다양한 느낌의 캘리그라피가 나올 수 있거든요.

  

캘리그라퍼로 활동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시간을 분배하는 것이 가장 어려워요. 캘리그라퍼는 제품 각각의 이미지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기업이나 개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을 글씨에 담아내야 해요. 단시간에 이뤄지기는 어려운 일이죠. 글씨는 다양한 작품을 보고 연습해야 하는데, 많은 일을 하다 보면 한 작품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한 작품을 끝내고 그것을 되돌아보면 글씨로 기업과 소비자, 제품과 이용자 사이를 연결한다는 점에서 뿌듯함을 느껴요.

 

좋은 캘리그라퍼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점이 있나요?

도구를 잘 다루어야 하는 1차적인 문제부터 소비자의 심리를 읽어야 하는 부분까지 많은 것을 갖추어야 해요. 좋은 글씨를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고,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죠. 또 광고의 기획의도와 디자인 구성을 면밀히 분석하고 기획자, 디자이너와 조화롭게 협업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인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죠. 경쟁제품과 차별화를 통해 소비자의 머리에 각인될 수 있는 독창성도 중요해요.

 

앞으로 캘리그라퍼의 전망은 어떤가요?

시장의 규모에 비해 활동하는 캘리그라퍼의 비중이 높아 경쟁이 치열하지만, 상용화된 폰트를 광고에 쓸 때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에서 캘리그라피의 수요가 증가할 거라는 긍정적인 전망도 있어요. 요즘 많은 사람에게 어떤 게 좋은 글씨인지 강의를 하고 있거든요. 앞으로는 좋은 글씨를 알아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시각적으로 성숙해지면 캘리그라퍼로서 준비된 사람이 분명 빛을 발할 거예요.

  

강의도 하면서 개인적인 작품 활동까지 바쁘신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예전에 디자이너로 일할 때는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 일은 하루 종일 작업해도 내 작품이라는 생각에 즐거워요. 글씨에는 사람을 닮은 표정이 깃들여 있어서 지루하지 않아요. 앞으로 사람냄새 나는 TV 드라마의 타이틀을 써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어머니가 즐겨보는 일일드라마나 주말드라마 타이틀로요. 요즘에는 먹 느낌을 살려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쉽지는 않지만 글씨와는 또 다른 느낌이 있어요.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나중에는 그림 같은 글씨를 써보고 싶어요.

  

기대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캘리그라퍼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좋은 글씨를 쓸 수 있을 때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해요. 창의력과 호기심이 있고, 다양한 생각을 끊임없이 할 수 있다면 도전해보세요. 큰돈을 버는 일도 아니고 노력한 만큼 바로 성과가 있는 일도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하루하루 즐길 수 있을 거예요. 꾸준히 노력하면 언젠가는 나를 찾는 사람들이 생기고 내 작품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끈기와 인내심으로 훌륭한 캘리그라퍼가 되기를 바랍니다.  

 

따뜻함과 차가움, 부드러움과 거친 느낌을 글씨로 표현할 수 있다니! 

캘리그라퍼는 제품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감성적인 직업이야. 

평소 주체할 수 없는 창의력을 자랑했던 MODU친구들, 캘리그라퍼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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