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11호]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김도연 위원장님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김도연 위원장님

대한민국 과학계의 미래를 말하다

 

인터뷰 권태훈

글 이소연

사진 박재영

누군가 침대는 과학이라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축구는 과학이라고, 다른 누군가는 마술이, 한글이 과학이라고 한다. 과학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대단하고 좋은 것임은 틀림없다! 그래서 나도 과학공부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은데. 망설이고 있는 독자들을 위해. 이번 달에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김도연 위원장님을 만나고 왔다!

안녕하세요. 위원장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반갑습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몸담고 있는 위원장 김도연입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는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정책과 예산을 총괄하는 기관입니다. 쉽게 말해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책을 제안, 관리하고 과학자들의 연구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하는 셈이죠.

과학계 수장의 학창시절

멋지십니다. 그런데 저도 어릴 때 막연히 과학자를 꿈꿨던 사람으로서, 과학자라면 매우 똑똑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을 책임지고 계시는 위원장님은 혹시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달걀이라도 한 번 품어보셨는지(웃음)?

그냥 평범하게 주어진 길을 걸어온 학생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반 60명 중 30등 정도 했으니 똑똑한 학생이었다고는 말 못 하지만 공부는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저도 학교 다닐 때 마찬가지였어요. 미적분이 항상 제 발목을 잡고는 했죠(웃음).

미적분이라는 말에 갑자기 친근감이 느껴지네요(웃음). 수학을 어려워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진학은 이공계로 하셨네요?

무려 40년 전 이야기군요. 저는 1970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은 국민소득 천 달러가 목표였죠. 학교 칠판에 그렇게 쓰여 있었지요. 지금은 국민소득이 2만 달러시대라고 하니 어떤 시대였는지 짐작이 가나요? 지금도 취업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그땐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웠어요. 그러다 보니 그 시절의 학생들에게는 취업해서 밥 굶지 않고 사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죠. 그래서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학생이 취업이 잘된다는 이유로 이공계를 택했고, 저도 그 중의 하나였어요.

음, 혹시 이공계 중에서 특별히 서울대 재료공학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솔직한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점수에 맞춰서 간 거였어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지요. 제가 입학할 당시 서울대 재료공학과가 처음 신설되었습니다. 신생학문이었죠. 또 그즈음에 재료공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포항제철(지금의 POSCO)’이 설립되기도 했고요. ‘도전’이라고 하기엔 너무 거창한 것 같고, 첫발을 내딛는 것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길이 더 넓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원서를 썼었습니다.

하하. 솔직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입학하신 학교공부는 재미있으셨나요? 40년 전 공대생의 대학생활! 궁금합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는 사실 대학생활이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 독재정권에 반대하여 시위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걸 막기 위해 강제 휴교가 흔한 일이었죠. 보통 한 학기에 두 달 이상 학교에 다녀본 적이 잘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대학생들의 반 정도만 다닌 거죠. 그러한 분위기 때문인지 그 시절에는 공부에 몰입하는 학생들도 없었고, 저도 그다지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문보다는 ‘운동’에 열정을 불태웠죠.

와. 운동이라면?

대학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조정부에 들어갔었습니다. 사실 제 발로 들어갔다기보다는 키가 크단 이유로 끌려갔다고 해야 맞겠네요(웃음). 그곳에서 대표선수로 활동하며 전국체전에서 은메달도 땄었습니다. 아 금메달은 당연히 해군사관학교였고요. <무한도전>에도 나왔던 것 같은데 조정은 여러 사람이 한 몸처럼 조화롭게 움직여야 하는 단체운동입니다. 조정을 하며 협동정신과 동료를 위해 힘을 내는 희생정신도 배울 수 있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조정부 활동이 제 대학 시절 값진 경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연구가에서 행정가로

얘기를 듣다 보니 공부보다는 조정을 더 열심히 하신 것 같고… 대학 시절 ‘아, 꼭 과학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은데 어떻게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되신 거죠?

사실 처음에는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취업 잘되는 이공계에 왔으니 졸업 후에 취업하는 게 목표였죠. 그래서 석사를 마치고 취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프랑스 정부의 초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후 취업과 연구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에 마침 서울대 재료공학과에 교수 자리가 났더군요. 운이 좋았죠. 사실 그때가 돼서야 ‘아, 연구자로 살아야겠구나.’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꽤 늦게서야 확신이 드신 거군요. 그렇지만 그동안 쌓아올린 연구 성과나 실적이 대단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세라믹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계시네요.

서울대학교에 교수로 임명되고 처음 한 다짐이 서울대에서 일하며 연구한 것으로 외국학술지에 논문을 싣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서울대에 부임한 82년 당시 외국학술지에 실린 우리나라 논문은 단 22편. 80년대 초반 우리나라의 과학 연구가 그만큼 뒤처져 있던 거죠. 그래서 더욱 열심히 연구에 매진하였고 그 결과로 여러 편의 논문을 외국학술지에 실었습니다. 그렇게 논문을 싣겠다는 목표를 이루고 나니 국제학술대회에서 강연을 해보고 싶은 목표가 생겼고, 또 이를 성취하니 외국학술지 에디터 제안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논문 한 편 싣는 게 목표였는데, 어느 순간엔 생각지도 않던 학술지 에디터 제안까지 받은 것. 저에겐 목표가 준 보상이었다고 할 수 있죠.

작은 목표에서 큰 목표로, 한 계단씩 올라서신 거군요. 그렇게 성공적인 연구자의 길을 걸어오시다가 지금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수장인 행정가로 변신하셨습니다. 어떠한 계기로 행정가의 길을 걷게 되신 건가요?

우리 사회에는 비효율적인 절차와 관행 등이 굳어져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음에도 따르려 하지 않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2005년 서울대 공대 학장을 맡으며 잘못된 관행에 대한 개혁을 시작했고, 그 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울산대 총장 등을 거쳐 국가 과학기술에 책임 있는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답니다. 개혁을 통해 사회가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뀌는 것을 보며 연구도 좋지만, 후학을 위해 ‘토양’을 다져주는 일도 매우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해 행정가의 길을 걷게 되었지요.

행정가로서의 길

지금 하고 계시는 일로 화제를 조금 옮겨 보겠습니다. 현재 이공계 전반의 가장 큰 문제는 똑똑한 학생들이 의대에만 목숨을 건다는 점일 것 같은데요. 이러한 현상 어떻게 보십니까?

넓게 생각하면 의약학도 이공계입니다. 그 분야로 훌륭한 사람들이 간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은 없지요. 다만 문제는 이공계 학생들이 자긍심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긍심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외려 ‘아, 나는 의대를 못 가서 여기 왔다.’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 문제죠. 이공계 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전망도 밝고 할 일도 많습니다. 이공계에 진학한 학생들은 졸업 후 과학기술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통해 국가발전에 기여할 것이란 자긍심을 가져도 됩니다. 아니,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공계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다고 보는 학생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국과위에서 이공계의 발전을 위해 펼치고 계신 일이 있나요?

학생들이 의대를 이공계보다 선호하는 이유는 의사는 평생 할 수 있는 전문직이고, 이공계 관련 직업은 미래 전망이 부족하고 고용도 불안정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이공계 관련 인재에 대한 수요는 무척이나 많으며, 연봉이나 처우로 봤을 때도 다른 분야에 비해 더 나으면 나았지 인식만큼 열악하지 않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과학기술인들의 자긍심 부족과 사회적 인식이 학생들을 오해하게끔 하는 것 같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정책적, 제도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글로벌 수준의 박사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비롯해 해외인턴사업 진행 후 취업과 연계시키는 노력, 은퇴한 이공계 인력을 기업과 학문 간의 연계를 위해 산학협력교수로 채용하는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분야 간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과학기술계가 먼저 외부로부터의 담장을 허물어 보려고 합니다. 어떠십니까? 이제 좀 이공계의 전망이 밝다는 거 느껴지시나요(웃음)?

네! 이렇게 나라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니, 이공계에 미래를 걸기에 부담이 없겠네요. 그런데 저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공계를 희망하다가도 노력만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월등한 친구를 보며 ‘내가 과연 이공계에 가도 되는 걸까?’ 라며 좌절하기도 합니다. 혹시 저 같은 후배들에게도 주실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특히 과학고등학교를 간 친구들과의 비교, 혹은 수학 과학 시험 점수 때문에 그러한 생각들을 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선행학습”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학문에 있어 분야를 막론하고 특출난 소질이나 천재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열정을 가지면 어느 분야에서든 자연히 잘하게 되는 것이죠. 앞서 이야기했듯이 저 같은 경우에는 수학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이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지금 주변에 ‘천재’ 같은 학생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차이는 금세 좁혀질 수 있습니다. 현재의 차이는 단지 선행학습과 공부에 들인 시간과 노력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라면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노력해보세요. 그러면 어느새 그 분야의 정점에 선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네, 그러면 우리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전망하고 계시나요?

92년 미국에서 잠시 생활할 때, TV를 살 일이 있었습니다. 애국심을 발휘해 우리나라 TV를 사려고 돌아다녔는데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매장에 전시가 안 되어 있더군요. 어쩔 수 없이 SONY TV를 샀습니다. 하지만 요즘 미국 전자상가에 가면 SONY는 사라지고 온통 LG와 삼성뿐입니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20년 만에 큰 성장을 하고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우리는 괄목상대할 성장을 해온 저력이 있는 만큼 과학기술의 미래도 밝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역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될 것이고요.

한국 과학 기술의 미래들에게

인터뷰 내내 강조하셨는데, 그렇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네요.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스스로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가 진짜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 일도 해보고, 저 일도 해보며 부딪혀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다림에 익숙지 않은 요즘 학생들,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모두 짧게는 20대와 30대 초반에 승부를 보려 하고 당장 화려한 직업을 택하려 합니다. 어떻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우리 사회가 지난 40년 동안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빠른 성장을 한 탓에 이런 조급한 생각이 몸에 밴 것 같군요. 하지만 그럴수록 학생들 스스로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인생을 길게 보면 20대 때 첫 직업, 때론 출신 대학의 이름도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언제든 바뀔 수 있고, 지금 실패하더라도 언제든 다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고 또 인생에서도 성공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가만히 앉아서는 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밖으로 나설 여건이 되지 않으면 책을 많이 읽어 간접경험을 쌓으세요. 책이 딱딱하게 느껴진다면 TED 같은 강연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거예요. 이러한 것을 참고로,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해본다면 언젠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하고 있는 행복한 미래가 오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책과 여러 강의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생각을 접해보라는 것이네요.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The only limitation is your imagination. 교수로 재직 중일 때 실험실의 학생들을 위해 써 붙여놨던 글입니다. 한계는 자기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청소년은 꿈을 크게 가지면 가질수록 크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물론 뭐든지 할 수 있으려면 당연히 그만한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요. 큰 꿈을 꾸기만 했는데 덜컥 이뤄진다면 그건 로또나 다름 없겠죠(웃음). 꿈을 크게 꾸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멋진 꿈만큼 멋진 삶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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