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10호] 희망연구소 소장, 서진규 박사님

 

서진규 희망연구소 소장, 서진규 박사님

가발공장 직공에서 하버드 박사가 되기까지

 

인터뷰 임수정

글 이규석

 사진 오린지

나는 안 돼, 이젠 끝이야, 포기할래. 여러분들도 이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사나요? 하지만 생각해 봅시다. 희망과 행복은 항상 그 자리에 있는데, 나에게 다가갈 용기가 없었던 건 아닐까요? 가발공장 여공, 식당 종업원, 미국에서의 외로운 식당 종업원 생활. 인생의 바닥을 박차고 나와 많은 사람들의 멘토이자 롤모델로 활동하고 계신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 서진규 박사님을 이번 달 MODU가 만나고 왔습니다. 

꿈도 없고, 목표도 없던 바보 소녀 

안녕하세요, 서진규 박사님. 한 줄 소개 부탁 드릴게요.

한 줄 소개라.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의 살아있는 주인공’ 정도면 어떤가요? 반가워요 여러분. 계속해서 꿈을 위해 전진하고 있는 서진규 희망연구소 소장, 서진규입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이제 옛말 아닌가요? 오늘날은 잘 사는 집 애들이 좋은 대학 가고, 좋은 대학 간 애들만 다시 성공하는 양극화 시대라고 많이들 이야기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양극화 시대라고 해서 쉽게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죠. 차별과 불평등, 그리고 사회경제적 격차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해 왔어요. 문제는 그것들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하고 극복해 나가냐 하는 거죠. 도저히 이룰 수 없을 정도로 큰 꿈을 가지세요. 나도 어릴 땐 꿈도 없고 목표도 없던 바보였어요. 하지만 꿈이 내 삶을 일으켜 세웠죠. 원래 꿈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꿈꾸는 사람을 가혹하게 다뤄요. 쉽게 이룰 수 있는 목표라면 그건 진정한 인생의 목표가 아니지 않을까요? 

어릴 때는 꿈도 없고 목표도 없으셨다고요? 지금 박사님의 성공한 모습을 볼 때는 전혀 와 닿지 않는데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나는 조그만 바다마을 ‘월내’와 ‘제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초등학교 때 학교 성적은 거의 전교 꼴찌였고, 숫기도 없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죠. 내 이름 석 자도 제대로 쓸 줄 모를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말 다 했죠? 거의 멍텅구리가 따로 없었어요.집안 환경도 정말 형편없었죠. 아버지는 능력 없는 말단 공무원인데도 노름벽이 있었고, 술장사하시던 어머니는 술에만 취하면 자주 나를 때리고 모진 말을 하셨어요. 언니는 팔 하나를 제대로 쓸 수 없는 불구와 결혼했고, 막내 명규는 저능아였죠. 나는 공부를 못 해서 아무런 기대를 받지 못했어요. 대신 새벽부터 일어나 집안일을 도맡아 했죠.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어요. 꿈이나 목표를 떠올릴 여유 따위는 없었죠. 

그 어린 나이에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고요? 정말 상상만 해도 힘드셨을 것 같아요.

아마 저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경험을 했을 거에요. 일요일마다 꽁꽁 얼어 있는 개울물을 깨고 고무장갑도 없이 산더미같이 쌓인 빨래를 할 때면 서러움이 목 줄기까지 차올랐죠. 하지만 정말 서러움이 사무치는 순간은 “가시나는 암 짝에도 씰데없다(계집아이는 아무짝에도 쓸데없다)”, “가시나가 어데 건방지구로 끼 드노(계집아이가 어디라고 끼어 드나)”, “집안일은 다 가시나가 하는 기라(집안일은 여자가 하는 거야)” 같은 말을 들을 때였어요. 나는 그럴 때마다 느꼈던 분노와 고통을 모두 껴안았어요. 가난하고 배경 없는 밑바닥 출신 여자도, 꿈을 갖고 도전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죠. 

꿈도 없고 목표도 없을 정도로 힘든 시절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보통 포기하고 싶어지지 않나요?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꿈과 목표를 갖고 인생과 맞서실 수 있었나요?

사실 제천에서 보낸 초등학교 6년과 중학교 시절은 내게 절망스러울 정도로 힘든 시기였어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아픈 시절을 겪었기에 지금의 서진규가 있는 거로 생각해요. 외부 환경이 고통스러울수록 나는 인생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내 자아는 더욱 단단해져 갔죠. 친구들은 노는데 왜 나는 벌벌 떨며 빨래를 해야 할까? 오빠는 누워 자는데 나는 집안일을 하나? 오빠는 왜 쌀밥을 먹고,나는 보리밥을 먹을까? 극한의 상황에 몰리니 분노와 고통, 절망과 좌절이 뒤엉켜 새로운 감정으로 승화되었어요. ‘언젠가는 성공해서 내가 이 억울함을 갚고야 말겠다’는 독한 마음을 품게 된 거죠. 

도전과 좌절, 그 속에서 피어난 희망 

우리나라에는 유난히 공부 때문에 고통 받는 청소년들이 많은데요, 서진규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공부라는 벽을 뛰어넘으셨나요?

중요한 건 절실한 꿈과 목표를 가슴 속에 품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거예요. 다른 친구들은 혼나기 싫어서, 매 맞기 싫어서 공부했지만 나는 성공한 인생을 살고 싶어서, 지옥 같은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서 공부했어요. 누구나 절실한 마음을 먹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성적이 나쁘다고 해서 좌절하지 말고 날 봐요, 누구나 공부 잘할 수 있다니까? 내가 살아있는 증거잖아. 기억력이 나빠서 같은 내용을 10번 읽어도 전교 꼴등 하던 서진규가,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까지 했잖아요? 

와. 정말 말 그대로 ‘살아있는 희망의 증거’시네요. 그런데 서진규 박사님 프로필을 보니 서울 풍문여고를 졸업하셨네요? 어떻게 제천에서 서울로 올라오시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도전이었을 것 같아요.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서울행을 꿈꿨어요. 서울에만 가면 뭐든지 다 가능할 것 같았어요. 악몽 같은 제천 생활에서 탈출하려면 죽어도 서울에 가야 한다고 우겼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서울로 가서 꿈을 펼치고 싶다며 나는 부모님을 설득했고, 다행히 서울에 계시던 작은아버지의 도움을 얻어 서울 풍문여고에 입학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서울은 내가 꿈꾸던 곳이 아니었죠. 가난은 서울까지 따라와 내 어깨를 짓눌렀어요. 학교 앞에서 간식 사 먹을 돈은커녕 학용품 제대로 챙길 돈도 없었고, 수학여행을 갈 무렵이면 들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부모님을 원망했어요. 돈을 벌기 위해 학교에서 잡지를 돌리고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든 생활을 이어 갔어요. 

그리고요?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으셨으니 아무래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좋은 대학교에 진학하셨겠어요?

서울에 홀로 올라와 열심히 공부했지만, 나는 원하는 점수를 받지 못했어요. 높다란 벽이 다시 내 인생을 가로막았죠. 집안이 가난했기에 재수는 꿈도 꿀 수 없었어요. 기술을 배운 게 아니었기에 취직할 자리도 마땅치 않았고요.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종로에 있던 가발공장에서도 일했고, 골프장 식당 종업원으로도 일했죠. 낮에는 여기저기서 무시당하고 짓밟혔고, 밤에는 쓰러져 가는 판잣집에서 잠을 청했어요. 하지만 나는 그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절대로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없는 돈을 모아 영어학원에 다니며 미래를 준비했죠. 학원비는 적은 돈이 아니었지만, 덜 먹고 덜 입더라도 꿈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정말 박사님의 삶은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네요. 이후에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시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미국 생활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하루하루 힘겹게 버텨 가던 어느 날, 우연히 ‘미국 가정집에서 식모로 일할 여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좌절과 절망, 허무함에 지쳐있던 나는 죽을 각오로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 보기로 했죠. 우여곡절 끝에 2년 만에 미국 비자를 받았고, 비행기표까지 손에 쥐었어요. 하지만 막상 떠날 순간이 되자 두려움이 몰려왔죠. 

‘말도 안 통하고, 길도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만약 사기꾼에게 당해 어디로 팔려간다면
?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건 아닐까?’
 

나는 나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갈등을 해결해 갔어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에서 가장 설득하기 힘든 ‘내 자신’의 마음을 얻는다면 어떠한 시련 앞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죠. 

미국 생활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미국 생활은 어떠셨나요?

미국에서 겪었던 일들을 자세히 풀어놓으려면 아마 책 몇 권을 써도 모자랄 거에요. 낮에는 대학에서 공부했고, 밤에는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야경주독 생활이었죠. 그렇게 스스로 희망의 불씨를 살려가며 열심히 꿈을 실현해 갔지만, 그 과정이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어요. 교수님의 강의를 알아들을 수 없어서 강의실에서 눈물을 뚝뚝 흘린 적도 있었고, 폭력적인 남편과의 불화도 견디기 어려웠죠.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내 앞을 가로막는 벽을 부숴 나갔어요. 아시아계 여성으로 미군 장교가 되었고, 하버드대학교 석사와 박사 과정에 합격했죠.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순간들이었지만, 그 순간들을 꾹 참고 이겨 내면 그 성취감도 더 커요. 나는 가능성과 희망의 산 증거가 되고 싶었고, 극복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그 차가운 벽들을 모두 내가 열어야 하는 문이라고 생각했죠. 

서진규가 말하는 꿈, 그리고 인생 

이렇게 잠깐 박사님 이야기를 듣는데도 가슴이 뜨거워지네요. 아마 많은 MODU 독자들에게도 인생의 나침반이 될 것 같아요. 이번에는 MODU의 청소년 독자들을 위해 생생한 조언 몇 마디 부탁해도 될까요?

일단 학벌에 관해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요?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목숨을 걸지만, 막상 하버드에서는 학벌이나 스펙을 잘 갖춘 학생보다는 바람직한 인간성과 가치관을 갖춘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하더라고요.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 다시 토익공부하고, 스펙 갖추고. 그리고 사회에 나오면? 이런 사람은 널렸어요. 오히려 미래에 자신의 값어치를 높이려면 젊을 때 밑바닥 인생을 경험해 보는 게 좋아요. 항상 전교 1등만 하고, 전교 회장만 하는 건 오히려 자신에게 마이너스야. 자신이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잘하는지 파악하려면 공부 외에 다양한 경험을 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미국에서는 추천서의 비중이 커요. UN에서 1주일 봉사활동 한 사람보다, 동네 복지시설에서 몇 년간 꾸준히 봉사활동을 한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하죠. 인생은 성적표에 찍히는 것처럼 딱딱 점수로 떨어지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그렇게 젊을 때 사서 고생하고, 어려운 길을 택하고 밑바닥을 경험하면 다른 경쟁자에 비해 뒤처지지 않을까요?

젊을 때 1년 2년 빨리 성공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 번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 물어봐요, 다들 젊을 때 성공하는 것보다 천천히 성공하는 게 좋다고 할걸? 빨리 성공하는 게 과연 좋을까? 20대에 인생의 정점을 찍고 나면 이제는 내려가는 일만 남을 것 아니에요. 차라리 땀 흘리고 노력하면서 천천히 차근차근 인생의 정상을 향해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인생 전체를 좀 더 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결정을 내리길 바랍니다.

문득 서진규 박사님의 이야기를 접한 청소년들이 젊을 때 고난이나 시련을 겪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드는데요. 정말 시련은 성공의 필수 조건일까요?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시련이 꼭 성공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시련의 경험이 있으면 앞으로 닥칠 어려움에 잘 대처할 수가 있지요.시련 없이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더 좋은 건 없겠죠. 또한 개인마다 자신의 성공의 기준이 다르니까 자신이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요? 

성공의 기준이라. 중요한 말씀이시네요. 그럼 혹시 공부가 너무 힘들다고. 포기하고 싶다는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공부하는 것 당연히 힘들고 어렵죠. 나도 지금은 하버드 학생들을 영어로 가르칠 정도로 영어에 능숙하지만, 처음엔 영어로 자기소개도 제대로 할 줄 몰랐거든. 대학교 신입생 때는 영어 원서 한 챕터 읽는 데 몇 시간씩 걸렸고. 하지만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도와주는 건 바로 꿈이야. 꿈이 없으면 공부를 잘할 수가 없지. 당장은 확실한 결과가, 뚜렷한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꿈을 갖고 도전하다 보면 어느새 성공이 코앞에 나타나 있을 거에요. 

박사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내 나이가 어느새 60이지만, 내 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에요. 새로 쓰고 있는 책을 미국에서도 인정받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싶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세계적인 연사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나서는 미국 국무장관이 되는 게 지금의 제 목표에요. 그러면 대한민국의 영원한 숙제인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거고요. 열심히 활동해서 번 돈들을 좋은 일 하는 데 환원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싶기도 해요. 내 나이에도 이렇게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많은데, 여러분은 얼마나 다양한 색깔의 꿈을 꿀 수 있을까요?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겨 주신다면?

주위의 시선이나 간섭에 구애 받지 말고 혁신적으로 살아가세요. 여러분을 둘러싼 조그만 세상을 넘어,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꿈과 목표를 가진 인재가 되세요. 내가 처음 미국에 갔을 때 느꼈던 그 벅찬 기분을 여러분도 느낄 수 있다면 참 좋겠네요. 여러분도 각자의 삶을 둘러싼 벽을 부수고 한계를 넘어 스스로 ‘희망의 증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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