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6호] 티치미 그리고 김찬휘

 

티치미 전 대표 김찬휘님

무료 인강의 선구자를 만나다

 

인터뷰 – 윤삼정

글 – 권동혁

사진 – 오린지

그에게는 타이틀이 많다. 티치미 외국어영역 대표강사, 티치미입시연구소 이사, 김찬휘영어연구소 소장, 깊은생각 ERS 대표강사. 그런 그가 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고 한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티치미 그리고 김찬휘. MODU가 한 번 솔직하게 그의 속내를 들어 보았다.

안녕하세요. 일단 MODU 독자분들을 위해 자기 소개 간단히 부탁 드립니다. 대표이사니 대표강사니 하는 타이틀 말고. 솔직하게 인간 김찬휘를 표현한다면?

음,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마음 속에 품은 꿈을 잃지 않는 사람, 김찬휘입니다.

꿈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20대, 30대, 40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사람들은 쉽게 변하잖아요. 학생들도 보면 고1때는 다들  SKY는 갈 수 있다고 말하다가 고3 되면 인서울도 고민하면서 적당히 공부하고 현실과 타협하죠.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에요. 20대 때 큰 꿈을 가슴에 품었던 이상주의자들이 취업을 하고, 또 결혼을 하고, 가장이 되면서 현실이라는 벽 앞에 몰려 닳아버리게 된다는 그런 흔한 이야기들. 하지만 저는 그런 태도는 젊을 때 스스로 삶에서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포기하고 난 뒤에 그것을 정당화하는 논리라고 생각을 해요. 저는 나이를 먹는다고 현실과 타협하고 싶지 않고, 변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꿈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거에요.

그렇군요. 그럼 학창 시절 때 품은 꿈을 그대로 갖고 계신 건가요? 김찬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어땠나요?

저는 어릴 때부터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성적이 잘 나왔어요. 하하. 좀 재수없나요? 부모님께서 딱히 공부를 강요하지도 않으셨고,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공부했어요. 다른 애들은 학원 다니고 뭐 하고 했지만 나는 그냥 즐겁게 어린 시절을 보냈죠. 놀기도 많이 놀고.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가치관이 정립되었죠. 저는 배재고등학교 출신이에요. 아주 전통 있는 학교죠. 국사 책에 나오는 배재학당이 바로 우리 학교였으니까. 배재고등학교는 공부보다는 공동체 의식과 단체 활동, 동아리 활동을 강조하는 학교였어요. 그러다 보니 동아리에 관련된 에피소드가 기억에 많이 남죠.

 

그렇군요. 김찬휘님께서는 어떤 동아리 활동을 하셨었나요?

저는 문예반 활동을 했어요. 안 어울리나요? 사실 문예반 활동을 하면서 글을 많이 쓰기보다는 책을 많이 읽었어요. 책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다 보니, 사회 비판적인 책을 많이 읽었죠. 동아리 원들끼리 모여 정권에 대한 비판도 많이 했었고요. 심지어 문예부 선배들 중에는 안기부에 끌려 갔다 왔다 하는 선배들도 있었죠. 필화사건이라고 하나? 선배들이 작성한 글들이 사회적으로 불순하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그런 시기였죠. 저는 소심하게 활동하다 보니 선배들과 함께 불려 다니지는 않았지만요. 하하.

하지만 그 때 동아리 선후배들과 밤새도록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 그 때 읽었던 책들은 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많은 영향을 주었어요.

하나 예를 들자면, 저는 남들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그 나라에서, 넓게는 전 인류에게서 더 많은 도움과 혜택을 받은 사람이라 생각해요. 자기만 잘났다고 살면 안되지. 저는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은 남들보다 사회에, 인류에 더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이랄까요? 구체적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 저렇게 살아야겠다 하는 인생의 계획 표는 없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른 삶이다. 그런 삶의 목표나 방향성은 고등학교 때 수립되었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경제학과를 가셨는데요?

제가 경제학과를 생각하며 유일하게 떠올렸던 화두는 경세제민. 즉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다스리는 경제학. 민중과 서민을 위한 경제학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철없는 결정이었지만요. 대학에 갔더니 경제통계학이니 수리경제학이니… 학교 다닐 때 생각했던 경제학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더라고요. 그리고 그 때는 공부에 열중하기 힘든 시대였어요. 학생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니까요. 지금과 달리 그 때는 학생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대학생이 거의 없었죠. 전국 대학생들이 함께 수업 거부를 하고 거리로 나가고. 그 시대를 살아 온 대학생들에게는 사회의 발전이 나의 발전이라는 의식이 공유되어 있었어요. 요즘은 생소한 이야기죠, 아무래도.

그런데 경제학과를 나오셨잖아요. 어쩌다가 학원가에 뛰어들게 되신 거죠?

경제학도 흥미가 별로 없고, 회계사 공부도 해 봤는데 너무 안 맞고. 그런데 졸업할 때 되니까 먹고는 살아야겠고 그래서 잠깐만 하자고 생각하며 교육업계에 발을 댔죠. 처음에는 노량진 쪽에서 강사로 시작했어요. 근데 이게 해보니까 적성에 맞더라고? 그렇게 자리를 잡아가던 와중에 다니던 학원에 사정이 생겨 짐 싸 들고 나와야 하는 상황이 생겼어요. 쉽게 말하면 잘린 거죠. 막막했어요. 그런데 어떻게든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학교 선배이자 동료였던 한석원 선생님과 함께 큰 서울지도를 하나 사다가 펼쳐 놓고 고민했어요. 어디로 가야 또 먹고 살 길이 생길까? 일단 아파트가 많은 동네로 가자는 게 우리의 결론이었죠. 눈에 딱 들어오는 게 대치동이었어요. 그곳에서 깊은 생각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터를 잡았죠.

그럼 그게 오늘날 대치동 보습 학원 신화의 시작이군요?

한석원 선생님과 저는 일단 보습 학원을 차리기로 했어요. 서울대 출신 강사 두 명이 새로 학원을 차렸다니까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이 우리 학원에 찾아 왔었죠. 그런데 당시에는 돈을 훨씬 많이 줄 테니 그룹과외를 해달라고 요구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하지만 한석원 선생님과 저는 그룹과외가 옳지 않다는 합의가 있었어요. 그룹과외는 수준별 학습이 불가능하거든요. 대신에 테스트를 거쳐서 실력별로 반을 짜겠다고 하니 절반 이상의 학부모들이 되돌아갔어요. 지금은 과목별, 수준별로 수업을 듣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참 어려운 선택이었어요. 돈을 손쉽게 몇 배로 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리는 결정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옳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지는 않았어요. 가슴 속에 품은 뜻을 무너트릴 수 없었죠.

 

지금은 티치미라는 온라인 사이트로 더 유명하시잖아요, 처음 온라인 강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요즘 학생들은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겠지만, 막상 인터넷 강의의 역사는 10년도 채 되지 않았어요. 2002년 정도에 처음 인터넷 강의 서비스가 등장했고 이는 초고속 인터넷망을 타고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죠. 서울 지역 유명 강사들은 인터넷 강의 시장에 하나 둘 뛰어들었어요. 아무리 수업을 잘하는 강사라도 한 수업을 몇 천명에게 동시에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그 한계가 인터넷을 통해 극복된 거에요. 거의 혁명이었죠, 혁명. 그렇게 사교육계는 격변의 시기를 겪었죠.

정말 완전히 판이 바뀌는 기회였네요? 그 때 무엇을 보고 온라인에 뛰어 드셨나요?

엄청난 속도로 돈이 오가는 시기였어요. 스타 강사들의 몸값은 점점 치솟았고 인터넷 강의 업체들로 돈이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 때 다른 것을 보았어요. 어쩌면 인터넷이 제 꿈을 이루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학창 시절부터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고민했고, 민중을 위한 활동 그리고 서민을 위한 활동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인터넷 강의를 통해 교육의 평등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통해 잘 사는 집 학생과 못 사는 집 학생이 똑 같은 기회를 갖고 경쟁할 수 있으리라 믿었죠.

인터넷 강의 시대가 열리면, 모든 학생들이 지역과 계층의 차별 없이 강남 학생들과 똑 같은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공간에서도 여전히 인터넷 강의는 비쌌고, 가난한 학생들은 자유롭게 강의를 들을 수가 없었어요. 문제 의식을 함께 공유한 한석원, 한석원, 김찬휘, 최인호 이렇게 네 명이서 티치미라는 사이트를 오픈하고 인강 무료화 선언을 하게 되었어요. 그 때가 2004년이죠. 소위 일타 강사라고 불리우는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 잘 가르칠 수 있다는 대치동의 자부심, 더 많은 학생들에게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자는 꿈,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시작한 일이었죠.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들인 만큼 다시 사회에 갚아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도 있었고요.

인터넷 강의로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앞에서 전면 무료화라. 아무래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힘든 일은 없었나요?

정말 힘든 일 투성이었죠. 선생님들 각자 수업을 하면서 없는 시간을 짜내어 인터넷 강의를 촬영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큰 판을 짜는 데서 생기는 강의 외의 스트레스들도 상당했어요. 그럼에도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대치동 강사로써의 자존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인터넷 강의 시장에는 돈을 노리고 뛰어든 엉터리 강사들도 많았거든요. 사교육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저희는 나름의 교육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강의를 하는데, 그 사람들은 학생들한테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강의를 비싼 가격에 팔아 먹는 거에요. 그 사람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려면 무료다. 그런 일종의 경쟁심 같은 것도 있었죠.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꿈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는 김찬휘 전 대표가 어째서 티치미 무료화를 포기하게 되었는지를

당시 티치미 무료 강의 의 열풍은 대단했죠. 그런데 어째서? 어째서 2006년 돌연 유무료화 병행이란 결정을 하신 건가요?

티치미를 무료로 운영하면서 참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무료 강의를 통해 교육 평등을 실현하자 그런 꿈이 있었는데. 막상 해 보니 우리 힘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가 없었어요. 여전히 비싼 돈을 내고 유료 강의를 찾으며 “공짜 강의는 뭔가 모자랄 거야. 비싼 게 뭔지는 몰라도 더 좋을 거야” 라는 학생들을 보며 티치미 선생님들은 절망했죠.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분명 EBS와 강남구청, 티치미가 무료 강의를 제공하면 유료 강의가 줄어들어야 하는데, 유료 강의는 더 많아지고 인터넷 강의 업체들의 덩치는 더욱 커졌어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죠.

이대로는 교육을 변화시킬 수 없다. 무료강의라는 우물 밖으로 나가자.

그런 상황을 보면서 아, 우리는 그저 무료강의라는 우물 안에 갇혀서 자족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학생들이 단순히 무료니까 좋은 강의다 정도로 티치미 강의를 생각하고 있었다면 우리는 정말 뭔가 잘못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학생들이, 학부모들이 기꺼이 우리 강의를 위해 대가를 지불할 만큼 티치미가 인정 받은 후에야 비로소 우리가 교육을 변화시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티치미는 사업을 더 확장할 수가 없었어요. 인강 시장을 개혁하려면 좋은 강사를 더 모셔와야 하는데 무료강의는 적자만 보는 구조잖아요. 이대로라면 티치미 자체가 없어질 위기였어요. 유무료 병행 선언은 뼈를 깎는 결단이었죠.

티치미를 살리고, 나아가 티치미를 키우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시 학생들의 배신감이 상당했는데요?

질타와 비난이 많을 수 밖에 없었죠. 아마 살아 생전에 그렇게 많이 욕을 먹은 적이 없었을 거에요. 글을 통해 입장을 밝힌 이후에도 비난은 그치지 않았어요. 오히려 오해의 골만 깊어 질 뿐이었죠. 그 때의 쓴 소리들은 지금도 가슴 속에 품고 있습니다. 말로서 대응하기보다는 앞으로의 티치미의 행보를 통해, 제 인생을 통해 김찬휘의 철학, 김찬휘의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해 나갈 거에요. 저는 여전히 교육을 통해, 티치미를 통해 평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데 기여하고 싶고. 그러기 위해 지금도 계속해서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있답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그럼 김찬휘님의 지금의 꿈은 무엇인가요? 앞으로의 목표는?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품었던 생각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거에요. 제 몸을 다 바쳐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 세상을 위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 말이죠. 어차피 무료강의 시장은 EBS가 독점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 틈새 시장에서 일부 학생을 위해 무료 강의를 제공하고 그러면서 스스로 만족하는 그런 일로는 성에 차지 않아요. 아예 전체 판을 바꿔 버리고 싶은 마음이죠. 교육 분야에서 세상이 짜 놓은 판, 논리, 법칙을 뒤집어 엎어버리는 것. 그게 제 꿈이에요. 그게 어떤 때는 사회 운동으로, 어떤 때는 대치동 학원가의 변화로, 어떤 때는 티치미의 무료화로, 다시 어떤 경우에는 유료화로 실현되고 있을 뿐이죠. 저에게는 모두 똑같은 일이에요. 꿈을 실현해 나가고 있는 과정이죠.

마지막으로, 오늘날 고등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남겨 준다면?

제 좌우명은 “너의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 하든”에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표현이죠. 남들의 편견에 굴복하면 여러분은 절대 여러분의 삶을 살 수 없어요. 서울대 나온 놈이 왜 그렇게 사냐 라던가, 그런 학교 가서 뭐 해먹고 살겠냐 라던가, 헛된 일 하지 말고 취직 준비나 하라던가, 하는 주위의 여론들을 극복하세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절대로 굽히지 마세요. 물론 타인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면서 자기가 선택한 길이 맞는지를 검증하는 일은 항상 필요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본인의 의지와 꿈을 꺾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도 자신의 마음 속에 품은 꿈을 포기하지 말고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럼 대한민국 고등학생 여러분, 힘내세요! 주어진 현실이 답답한가요? 하지만 지금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학생 여러분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여러분이 주체가 되어 대한민국의 교육 바꾸어 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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