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캠프 멘토칼럼

[6호] 김가놈과 김서방. 불편한 진실

고딩은 모르는 이야기

김가놈과 김서방. 불편한 진실.

 

글-권동혁

어느 푸줏간에 두명의 양반이 고기를 사러 갔습니다. 고기를 사러 간 한 양반이 그 주인에게

김가놈아, 고기 한 근만 다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바로 솜씨있게 고기를 한 덩어리를 잘라 그에게 주었습니다. 옆에 있던 다른 양반이 말했습니다.

김 서방, 수고가 많네 그려. 수고스럽지만 고기 한 근만 주게나.”

하고 말하자 주인은 조금 전에 주었던 고기보다 두 배 이상이나 많은 고기를 잘라 그에게 주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양반이 버럭 화를 내며 주인에게 항의했지요.

“이런 상놈이 있나! 아니, 똑같은 한 근인데 왜 내게는 이거밖에 안주고 저 양반에게는 저리 많이 주는가?”

하고 말이죠. 그러자 주인이 답했습니다.

“어른께 드린 고기는 김가놈이 자른 고기옵고, 저 어른께 드린 고기는 김서방이 자른 고기옵니다.”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

여기에 잘 알려진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바로 김가놈과 김서방이야기다. 이와 유사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헬스장에서 라커룸 관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별 대단한 일은 아니고, 목욕탕에 들어가면 옷장 열쇠랑 입장권을 바꿔주는 사람이다.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된 점이라면, 이용하는 사람이 생각할 때는 한 명의 알바가 서 있는 동안 수십명이 입장을 하고 또 퇴장을 하니, 모든 회원이 똑같이 보이겠지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사람을 기억하는데 있어 의미있는 차이는 수많은 만남 사이에서도 만들어지더라. 무슨 말이냐고?

입장 절차에서 이뤄지는 그 찰나의 순간에 어떤 누군가는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어떤 누군가는 인사를 하면 반갑게 받아주고, 어떤 누군가는 보는 듯 마는 듯 키만 받아서 들어간다. 심할 때는 나에게 신경질을 내기도 하지. 그래서 나는 나의 작은 권력을 이용하여, 누군가에게는 코끼리와 기린도 들어갈 만한 큰 옷장을. 누군가에게는 쉽게 옷을 넣을 수 있는 위쪽 옷장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허리까지 굽혀야 하는, 옷 갈아 입다 보면 절로 얼굴에 피가 몰리는 아래쪽 옷장을 주었다. 나는 나의 작은 권력을 이용해 최대한 그들에게 응당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이다.

내가 잘못했던 것일까? 나는 모든 고객에게 항상 친절하고 평등한 1등급 서비스, 백분위 99짜리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했던 것일까? 하지만 누구도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왼쪽 뺨을 맞으면 나도 오른쪽 뺨을 때려야 하는 게 슬프지만 우리네 인생사다. 하지만 나는 오늘 ‘복수는 나의 것’ 컨셉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 또 대체 무슨 소리야. 내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전해주는 이야기. 고딩은 모르는 이야기. 돈 안 들이고, 굳이 내 입으로 뼈빠지게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도 더 좋은 대접을 받는 손쉬운 방법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이다. 

우리 선생님은 김서방? 아님 김가놈?

비슷한 일은 학교에서도 똑같이 일어난다. 삼사십 명의 학생들이 똑같이 반에 앉아 수업을 듣지만, 선생님들이 유독 예뻐하는 학생은 항상 정해져 있다. 과연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할까? 보통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기억에 남을 거라 생각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항상 선생님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선생님을 김서방으로 대하는 학생들, 아니 나아가 김양반님으로 대하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사랑과 함께 수행평가 점수까지 싹슬이하기 마련이지.

나는 유독 근현대사 선생님과는 좋은 관계를 만들지 못했다. 한창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던 고 3시절. 특별히 과목수업과 관련없어 보이는 근현대사 선생님의 이런 저런 요구가 나는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선생님과 나는 서로 김가놈 권가놈이 되었으며, 끝끝내 우리는 서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반장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선생님께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으며 1년 동안의 고3 시절을 보냈다.

결국 나는 심지어 학교 교육에도 의존하지 않는 자기주도적 학습(?)으로 수능 근현대사를 치러 냈다. 하지만 나의 근현대사 내신 성적은 만신창이였다. 그리고 선생님과 좋은 관계를 만들었던 친구들이 내신과 수행평가에서 나보다 좋은 점수를 훨씬 쉽게 따갔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쯤 얘기하면 실력을 같은 잣대에서 똑같이 평가받지 못하는 것이 부당하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그 선생님이 나를 부당하게 대한 것일까? 하지만 객관식의 정답이 확실한 시험이 아닌 이상, 사람이 사람을 평가한다는 점에서는 어떤 결과도 완벽할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좀 더 유리한 결과를 위해 노력하는 게 맞겠지.

 

내가 김서방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 김서방이 되었다.

사소한 인사 한 번, 말 한 마디에 좋은 점수와 나쁜 점수, 때로는 대학과 앞으로의 인생이 좌지우지될 등급 하나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잘 없다. 바쁜 삶에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생각이 못 미쳐서 일 수도 있겠지. 이 이야기는 절대로 “평가가 부당하다, 주관적이니까 틀렸어” 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평가가 부당하고 주관적이라 해도 글을 쓰는 나도, 글을 읽는 너도, 심지어 평가를 하는 사람조차도 그것을 증명해낼 방법은 없다. 어차피 인간적인 요소를 무시할 수 없으니, 점수를 위해 선생님께 굽실거리며 청탁하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비겁하고 미련한 짓이다.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너에게 바란다. 좀 더 지혜로워지자. 좀 더 쉽게 이야기 하자면 친구를 친구로 대하고,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대하고,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대하고, MODU를 MODU로 대해 달라는 뜻이다!

나에게 고기를 썰어주는 사람의 실체는 그가 김가놈인지 김서방인지가 아니라, 내가 그를 어떻게 부르는가에 달려있다.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같은 값으로 더 큰 고깃덩이를 얻어가는 지혜로운 양반, 지혜로운 MODU 독자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대들의 선한 미소, 초롱초롱한 눈망울이면 누구라도 김서방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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