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이로운 보험 상품 개발자 보험계리사
가족의 사망, 사고, 질병을 대비하는 보험부터 소중한 반려동물과 재산을 위한 특별한 보험까지. 보장하는 종류도, 범위도, 금액도 다양한 보험은 누가, 어떻게 만들까? 수학적 지식을 활용해 보험 가입자와 보험회사 모두에게 이로운 상품을 만드는 보험계리사에 대해 알아보자.
보험 가입자, 보험사 모두 윈윈(WIN-WIN) 보험 상품 개발
보험계리사의 가장 대표적인 업무는 바로 보험 상품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것. 간단히 말해 사 람의 생명과 관련된 보험 상품을 만든다면 사망할 확률, 사고 발생 확률, 질병에 걸릴 확률 등 을 계산하고 통계적인 기법으로 적정한 보험료를 산출하는 것이다. 새로운 보험 상품을 개발할 때는 어떤 보험과 보장이 필요할지부터 고민한다. ‘이런 경우, 이 런 상품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뒤 보장 범위에 대해 연구한다. 예를 들어 고혈 압 등 질병에 관한 상품을 개발하려면 정확하고 꼼꼼하게 보험 약관을 써야 하므로 고혈압에 관한 의학 논문을 공부하고, 해당 분야의 의료진과 인터뷰를 통해 정보를 얻기도 한다. 이후 보험 상품에 대한 적정한 보험료를 결정한다. 보험료가 너무 비싸면 보험사만 이익을 보고, 반 대로 보험료가 너무 저렴하면 결국 보험사가 손해를 봐 도리어 가입자가 보험금이 필요할 때 제대로 지급할 수 없다. 따라서 보험 가입자와 보험사가 모두 손해를 보지 않는 적절한 금액을 결정하는 것이 관건이다.
불확실성을 관리하기 위한 회사 재정 비축
보험은 불특정다수와 보험사가 함께하는 넓은 의미의 ‘계모임(목돈을 만들 기 위해 조직된 협동 집단)’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모은 기금을 공적 으로, 건전하게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험계리사는 이렇듯 만약을 대 비해 재정적인 흐름을 예측하고, 안정적으로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보험사의 재정을 관리한다. 외국계 보험사의 경우 보험계리사 가 회사 전체의 투자, 경영, 재무 관련 위험성을 함께 분석하고 평가해 보 험회사의 손익을 계산하기도 한다. 보험계리사가 가장 많이 쓰는 프로그램은 바로 ‘엑셀’. 비주얼베이직, 계리 용 소프트웨어, 통계와 확률을 계산하는 함수와 대용량 데이터를 잘 다룰 수 있는 정보 처리 능력이 필수적이다. 또한 예측을 위한 자료는 통계청, 또는 보험개발원과 보험 산업 자체에서 공유하는 데이터를 활용한다. 이 후 상품을 판매한 뒤 그에 따른 피드백과 경험으로 보험료를 다시 올리거 나 내리기도 한다.
‘라이나생명보험’은 혁신적인 보험 상품을 개발하는 걸로도 유명하죠?
맞아요. 일명 ‘무심사 보험’,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이라는 광고 멘트로 사람들에게 각인된 보험사예요. 지금은 대중적인 보험이지만 치아 보험을 처음 만들기도 했고요. 표적항암제(암세포가 자라는 데 필요한 요소를 억눌러서 암세포의 증식과 성장을 방해하는 약물. 암의 진행을 늦추고, 생존 기간을 늘릴 수 있다)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는 암환자에게는 고액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보험 상품도 업계 최초로 개발했답니다.
그중 계리사님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보험 상품이 있다면요?
전 고혈압 환자만 가입할 수 있는 보험 상품을 만들었어요. 이전에 없던 보험이라 여러 기관이 개념을 이해하기도 어려워 불신의 눈길을 받기도 했었죠. 비록 아주 잘 팔린 상품은 아니었지만, 질병이 있어도 가입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넓힌 보험의 시작점이 된 상품이라 ‘내 새끼’처럼 마음이 쓰인답니다.(웃음)
15년 차 보험계리사로서, 보험계리사의 업무에서 꼭 유념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일까요?
보험계리사의 업무는 금융 업계에서 투자 모델을 만들거나 금융 시장의 변화를 예측하는 ‘퀀트(Quant)’와도 비슷하지만, 우리는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주로 다룹니다. 인간의 전반적인 삶에 관심을 두고 관찰력이 필요한 직업이죠.
또 보험사가 재정적으로 흔들리면 결국 피해는 보험 가입자가 받기 때문에, 가입자와 보험사의 이익에서 균형감을 갖출 줄 알아야 해요. 많은 사람이 ‘예측’에 대해서도 편견을 갖는데요, 예측이란 ‘이거다!’ 하고 정답을 맞히는 게 아니랍니다. ‘여기부터 여기 사이에 있으면 우리는 안전해’ 하고 범위를 정하는 거죠. 그 범위 내에 있어야만 보험 가입자와의 약속도 지키고, 보험사도 이익을 볼 수 있으니까요.
왠지 ‘보험계리사’라고 하면 숫자를 잘 다루는 ‘이과 머리’ 친구들에게 어울리는 직업 같아요.
논리적이고 인과관계를 맞춰보는 것을 좋아한다면 계리 업무를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꼭 필수적으로 보험계리학과 등을 전공해야 할 건 없고요. 수학과, 통계학과, 경제학과 전공생이 현업에 많지만, 굳이 전문적으로 보험을 공부하기보다는 경제학과 수학을 넓게 다뤄 공부해봤으면 해요.
보험계리사가 되려면 관세사나 회계사처럼 필수 자격이 필요하죠?
금융감독원에서 실시하는 보험계리사 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학력이나 성별, 연령, 경력, 국적 등 응시 제한 자격은 없지만 토익, 토플, 텝스 등 공인 영어 성적은 필요해요. 대표적으로 토익은 700점 이상이어야 한답니다.1차 시험에서는 보험계약법과 보험업법,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경제학원론, 회계학, 보험수학 등을 과목으로 치르는데, 합격 인원 제한은 없어요. 객관식이고요. 보험 수리 업무를 5년 이상 해본 경력자라면 1차 시험을 보지 않아도 된답니다.
1차 시험에 합격하면 2차 시험으로 계리리스크관리, 보험수리학, 연금수리학, 계리모형론, 재무관리 및 금융공학 등을 논문형으로 치르게 됩니다. 이 역시 합격 인원에 제한이 없어요. 하지만 5과목 모두 60점 이상 득점해야 하므로 난이도가 만만치 않죠.
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보험계리사로 일할 수 있나요?
합격한 뒤 6개월간 금융감독원과 생명보험 및 손해보험사, 보험협회, 보험요율산출기관과 금융감독위원회가 지정하는 기관에서 실무실습을 받습니다.
보험계리사로 일하게 되면 보험사는 물론이고 계리법인과 회계법인 내 계리부서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등 기금 성격을 지닌 업계에서는 모두 환영하는 자격이고요. 보험계리사로 일하다 보면 보험사의 모든 업무를 꿰뚫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보험사에서 경력을 쌓은 뒤 계리 컨설턴트로 진출하는 경우도 많답니다.
마지막으로 보험 관련 진로를 꿈꾸는 청소년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인공지능이 확률 계산과 프로그램 등 업무 일부분을 대신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보험이란 인간의 삶을 다루는 직업이므로 보험계리사의 업무를 모두 대체할 수는 없을 거예요. 전 공대 출신이고, 20대 후반에 보험계리사라는 직업을 처음 알았어요. 꿈을 늦게 가졌더라도 수학이 기본이 되고, 논리적인 사고를 연습한다면 충분히 보험계리사라는 직업에 도전할 수 있으니 관심을 갖고 지켜봐주길 바랍니다.
글 전정아 ● 사진 손홍주,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