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특집 ④] 친근하고 자연스레 세계를 홀리다 한지 제품디자이너
한국 고유의 한지를 일상 소품에 녹인 한지 제품디자이너를 만나봤다.
생활 속 무엇이든 그들의 손에서
작은 바늘과 연필부터 커다란 선박과 항공기까지. 제품디자이너란 우리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각종 제품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다. 한지 제품디자이너는 우리 눈에 익숙한 한지를 재료로 생활소품을 만든다. 먼저 만들고자 기획한 제품에 적합한 한지의 종류를 선택한다. 예를 들어 한지 접시를 만들고 싶다면 대량 생산을 할 수 있을 만큼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질기고 인쇄할 수 있는 두께의 한지를 정한 뒤 테스트를 한다. 한지 틀에 닥나무 섬유와 물을 넣어 저어서 종이를 뜬 뒤 건조하는 식으로 필요한 한지를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제품에 어떤 이야기를 담을지 정하는 디자인 과정을 거친 뒤 정면, 측면, 후면 등 제품을 여러 각도로 볼 수 있도록 3D 모델링을 해서 그에 맞춰 ‘금형’을 한다. 금형이란 간단히 말해 재료를 가공하고 성형하는 기술인데, 한지 접시를 재단할 때는 ‘톰슨 프레스 머신’이라는 기계를 이용해서 원하는 모양으로 잘라낸다. 또한 종이를 활용하기 때문에 생활방수가 되도록 코팅을 하거나, 알루미늄을 넣어 자유롭게 휘어지는 잎맥을 표현하는 등 디자인 설계를 거듭한다. 샘플이 만들어지면 시장의 반응을 확인하며 대략적인 생산량을 정한 뒤 제품을 포장할 패키지도 함께 준비한다. 또한 출시 전 디자인 특허 등 지식재산권을 출원해 디자이너 고유의 제품임을 법적으로 보호받아 디자인 도용, 불법 복제 등을 막는다. 이후 제품을 촬영해서 온라인용 상품 페이지를 만들어 판매를 시작한다.
제품디자이너는 전자기기, 가구 등을 제조하는 회사에 속해서 회사 제품을 개발하는 ‘인하우스 디자이너’, 클라이언트의 의뢰에 따라 제품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디자인 스튜디오’ 소속 디자이너, 그리고 디자이너 개인이 공방을 차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디자이너 메이커’ 브랜드로 나뉜다. 디자이너 메이커 브랜드를 운영하는 경우 국내외 박람회에 참가하거나 인테리어 편집숍 등에 제안서를 작성해 배포해서 직접 영업한다.
“자연스러운 멋을 넘어 자연을 살리는 제품을 만듭니다”
김현주스튜디오 김현주 작가
처음 한지로 작업을 하고, 한지 제품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현주스튜디오’로 첫발을 내디뎠을 땐 대리석 제품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대리석은 깎는 것 이외에는 가공 방법이 거의 없어요. 단가도 높아서 대중이 소비하기 쉽지 않았죠. 하지만 자연 소재가 주는 매력은 놓치고 싶지 않았고, 그러다 찾게 된 게 한지였어요. 한지는 닥나무 섬유질이 퍼져 있어 내구성이 좋고 칠했을 때 자연스러운 멋이 나요. 그래서 한지를 다양하게 활용하며, 선물하기도 좋은 제품을 만들게 됐답니다.
‘김현주스튜디오’ 제품의 특별한 점을 알려주세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물건이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을까요? 만드는 과정 하나하나 핸드메이드라 똑같은 제품이 없어요. 한지에 색을 입힐 때는 인쇄하지 않고 브러시로 원하는 색감이 나올 때까지 직접 칠하고요. 또 한지, 대리석, 나무등 자연 소재는 결이며 무늬도 전부 다르죠. 사실 제품 하나를 만들 때마다 늘 의심해요. ‘사람들이 이걸 좋아할까? 세상에 물건이 이렇게나 많은데, 왜 내 제품을 소비할까?’ 하면서요.(웃음) 그래서 90퍼센트 정도 완성되면 방치해두며 고민하고, 검증하는 시간을 가져요. 제품에 확신이 들면 그제야 내놓는 편이라 완성도 는 자신 있어요. 또 제품마다 한국의 아름다움도 담으려 하고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한국의 미’는 무엇인가요?
한 단어로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한국인이 익숙하게 여기고, 예전부터 보아오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옻칠, 한지 등 소재, 오방색이나 단청 문양, 떡살 무늬처럼 고유의 색감과 패턴, 소반의 곡선 테두리가 주는 부드러움 등이 한국적인 요소잖아요. 똑같은 줄무늬나 물방울무늬여도 한지에 그리거나 먹물로 찍으면 한국적이라고 볼 수 있겠죠.
스테디셀러 중 ‘오크잎 접시’가 눈에 띄어요. 일회용 접시지만 미생물로 생분해되는 지속가능한 재료를 사용하는 것도 한지를 다루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인가요?
맞아요. 자연 소재를 쓰다 보니 그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환경을 보호하는 데에도 눈을 뜨게 된 거죠. 생분해 접시는 매립하면 자연적으로 분해되고, 소각하면 환경호르몬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었어요. 유럽이나 미국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이미 생분해 소재에 관심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미국과 독일, 프랑스 등 해외에서 더 주목을 받나 봐요. 해외 페어에 꾸준히 한지 제품을 출품하고 있거든요. 이전에 프랑스의 ‘파운데이션 루이비통’ 아트숍에서 제 한지 연잎 트레이를 판매한 적이 있었는데, 다른 설명 없이 ‘한국 종이 제품’으로 간단하게 소개된 걸 보니 한지가 점점 알려지고 있구나, 하며 보람도 느꼈죠.
마지막으로 전통 공예나 제품디자인에 관심이 있다면 어떤 걸 해보는 게 좋을까요?
하이메 아욘처럼 유명한 제품디자이너 전시는 꼭 보세요. 디뮤지엄, 한가람디자인미술관의 전시 정보를 체크하고, 온라인 매거진으로 젊은 디자이너들이 쏟아내는 작품을 보면서 자극도 받고요. 전통 공예에 관심이 있다면 전통산업진흥센터나 한지박물관 등에서 직접 종이를 떠보면서 한지에 익숙해지는 것도 추천합니다.
김현주스튜디오의
예술 도록
생활 속에 한국의 미와 공예 정신을 담은 ‘김현주스튜디오’의 제품들
물 위의 연잎을 연상시키는 한지 연잎 트레이와 가을날의 낙엽이 떠오르게 하는 한지 나뭇
잎 트레이. 알루미늄을 넣어 잎맥을 자유롭게 접을 수 있어 원하는 모양의 트레이로 만들 수
있다. 국산 한지로 만들었으며, 생활방수를 위해 셀락(Shellac)이라는 천연곤충수지를 코팅
제로 발랐다. 오크잎 접시는 두 가지 사이즈로 준비해 실용성을 높였다.
수묵화 질감의 화기와 대리석 트레이. 화기는 한국의 자연석인 편마암으로 만들
어 제품마다 패턴이 다르다. 재료를 직접 선택해서 수가공으로 정교하게 제작하고
있다.
서울의 모습을 단순화해 화이트 마블을 비정형 오각 형태로 디자인한 서울 트레이도 눈길을 끈다
글 전정아 ●사진 손홍주, 김현주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