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 특집 ③] 전통과 현대를 재해석해 공간을 짓다 한옥 건축가
현대 건축자재로 전통한옥의 단점을 극복한 현대한옥이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한옥이 새롭게 재탄생하기도 하고,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 역할로 한옥이 활용되기도 한다. 재해석한 전통으로서의 한옥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다시 주목받는 한옥
대한민국의 주거형태는 아파트나 빌라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1970~80년대 초가집과 기와집을 다 없애고 양옥집으로 대부분의 주택이 바뀐 이래로 한옥은 현대인의 일상에서 사라졌다. 또한 주택 개발이 대규모로 이뤄져 한옥을 건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옥과 멀어지니 한옥에서 산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한옥은 좌식 생활을 기본으로 하고, 단열에 취약해 춥기 때문이다. 개방형 공간인 만큼 화재나 방범에 취약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파트의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고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달라지면서 다시 한옥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층간소음 걱정 없으며, 마당을 가꾸며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아토피 같은 환경문제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한옥의 전통적인 미, 자연과의 공존, 공간의 다양성, 심리적 안정감,친환경적 건축자재 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여 한옥에 거주하기를 희망하게 된 것이다.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되살린 현대한옥
한옥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요소로 기와지붕, 기둥이나 보가 노출된 목구조, 대청마루, 마당 등을 꼽고 있다. 현대한옥은 이러한 요소를 가지고 개발과 보습을 하기 위해 지어지는 구조이다. 건축자재가 다양해짐에 따라 목재의 구조와 강도를 높여서 규모를 넓힌다. 특히 한옥 리모델링의 경우, 한옥의 골격은 그대로 두고 공간을 재구성한 뒤 창문의 크기와 단열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보통 현대한옥은 현대인의 생활에 맞춰 설계된다. 각 방 사용자에 따른 의견을 수용하여 공간을 설계한다. 사는 사람들의 취미생활과 생활양식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성을 품고 있다. 건축 전용 면적이 넓지는 않지만, 거주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곳이 바로 현대 한옥인 것이다. 이웃은 물론 가족과의 대화도 단절된 현대인들에게 한옥이 소통의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한옥은 모든 방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여서 소통 단절과 우울증을 겪는 현대인에게 힐링 공간으로서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전통에 대한 애정으로 한옥 건축을 시작하다
다니엘 텐들러(어반디테일 공동대표, 건축사, 건축생물학 컨설턴트)
어반디테일은 전통과 현대 건축을 잇는 건축회사입니다. 전통 건축의 공간과 의미를, 현대 건축의 재료 및 시공법과 생활에 맞게 반영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특히 건축주와 신뢰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건축주가 요구하는 것들을 건축 계획과 디자인 과정에서 충분히 소통하고 교류하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건축 설계도 하지만, 인테리어 디자인도 함께 하고 있어요. 또 건축주에게 적합한 건축환경도 제안합니다.
한옥건축 분야로 창업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한국에서 10년간 건축 일을 하고 있어요. 한옥을 전문으로 하는 다른 건축사무실에서 4년간 일하고 그곳에서 함께 일하던 최지희 소장과 함께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건축사무실에서 직원으로 계속 일할 수도 있는데, 저만의 관점으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죠. 2014년 어반디테일이 탄생했고, 5년 정도 운영했어요. 건축설계사무소의 경우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데 필요한 기간이 꽤 길어서 이제야 자리를 잡았다는 기분이 들어요.
원래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건축사로 일하기까지 과정이 궁금해요.
경제연구원에서 3개월간 인턴 실습을 하면서 대형 사무실에 앉아서 일하는 게 저랑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죠. 한옥 건축에 관심이 많아 교육기관을 알아봤어요. 독일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변의 의견에 따라 다시 대학에 진학했어요. 부모님이 전공을 바꾼 적이 있어서 이해를 많이 해주셨죠. 건축학이 창의적인 전공이었고 재미난 수업도 많았고, 스케치하는 것도 좋아서 공부는 재미있게 했어요. 한국에서는 건축사로 활동하려면 5년제 건축학과를 나와서 3년간 실무를 다지면 건축사 자격시험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한국에서의 경력으로 독일에서 건축사를 취득했어요.
독일에서는 한옥 건축 교육과정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공부했나요?
대학 교육과정이 좀 자유로운 편이었어요. 과목을 선택해서 과목의 교수를 찾아가서 한옥 관련 프로젝트를 할 수 있냐고 물어봤죠. 교수들이 “한옥을 모르는데 어떻게 수업할 수 있겠냐”라고 하면 “한옥에 대한 것은 제가 마련하겠다. 교수님은 건축은 아니까 ‘공간이 잘 마련되었는지, 동선이 괜찮은지‘를 알려주시면 된다”고 말했죠. 이렇게 미리 수업 계획을 보여드리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건축 프로젝트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나요?
어반디테일은 주택을 위주로 하고 있는데, 건축주가 건물을 짓고 싶다고 하면 땅을 우선 연구하거나 기물을 검토한 뒤,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을 듣고 설계를 하기 시작하죠. 평면부터 설계해서 3D 작업과 인테리어 설계까지 하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허가 등의 행정처리를 시작해요. 한옥은 심의를 거치기 때문에 수정사항이 있으면 길어지죠. 종로구의 경우 건물을 지으면 문화재 발굴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행정업무가 길어집니다. 건축허가가 나면 현장에 가서 계획대로 잘 진행되는지 확인합니다. 신축건물을 기준으로 설계기간은 3~4개월이지만, 건물이 지어지는 데까지는 빠르면 6개월부터 18개월까지 소요됩니다.
한옥 건축의 장점은 무엇이 있나요?
무엇보다 한옥을 지으면서 쓰는 재료가 좋아요. 건축현장에 가면 나무냄새에 기분이 좋아지고요. 현장에서 일하는 장인과도 소통을 많이 할 수 있어요. 일반건축보다는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해요. 그래서인지 한옥을 지으면 애정이 많이 가요. 문화유산으로 생각하기도 하고요. 리모델링도 그렇고 신축하게 되어도 건물이 지어지면 보람이 많죠.
명함에 ‘건축생물학 컨설턴트’라는 직함이 있어요.
독일에만 있는 특수한 자격인데, 지금은 유럽으로 퍼지고 있어요. 독일어로 ‘Baubiologie’라고 하는데, 건축이 사람에게 신체적, 심리적 영향을 끼치는 것, 건축할 때 환경과 에코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것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해서 건축하고자 하는 분야에요. 1970년대에는 건축자재가 사람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가 시작된 학문이었는데, 지금은 더 확장된 개념으로 건축자재뿐만 아니라, 그 자재가 만들어지는 과정까지도 다 생각하게 되었죠. 이 분야는 건축주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건축에 적용할 수 있는 일이에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는지 궁금해요.
어반디테일은 일반적인 현대주택도 설계하고 있어요. 이런 현대주택에서 공간을 전통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끊임없이 범위를 넓히고, 다른 분야의 활동도 하고 싶어요.
건축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려요.
건축가라는 직업이 사회적으로 로맨틱한 직업으로 비춰지곤 해요. 펜 들고, 설계도면을 그리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일은 10~20%예요. 공무원을 상대해야 하고, 시공하면서 책임도 많이 느끼죠. 노동시간도 긴 편이에요. 직업을 선택할 때 본인의 성격도 고려했으면 좋겠어요. 무언가 다양한 것을 보고 창의력을 발현하고 내 작품도 만들고 싶고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면 건축사라는 직업이 잘 맞을 거예요.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것보다는 현장 감리하는 등 활동 범위가 넓은 직업입니다.
글 강서희 ● 사진 안형준,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