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와 꿈 글로벌 롤모델

누구나 백조가 될 수 있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 무용수 미스티 코플랜드

누구나 백조가 될 수 있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수석 무용수 미스티 코플랜드

글 김현홍 ●사진 위키미디어커먼즈

화려한 무대 위 우아한 동작, 절제된 동작에서 나오는 아름다움, 새하얀 발레복과 창백한 분홍색의 토슈즈. 발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하지만 왜 유색인종의 발레리나가 주인공인 <백조의 호수>나 <호두까기 인형>은 바로 떠올리기 어려울까.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최초 흑인 여성 수석 무용수 미스티 코플랜드는 오늘도 이러한 고정관념에 맞서고, 발레의 다양성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미스티 코플랜드는 1982년 9월 10일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는 4번의 결혼과 4번의 이혼을 한 홀어머니 아래 6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자랐다. 어린 시절, 그는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무료 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모텔 방을 전전하며 지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지역 소년 소녀 클럽에서 발레를 배워보라는 제안을 받는다. 이에 미스티 코플랜드는 13세의 나이로 발레를 시작한다. 또래보다 매우 늦은 시기에 시작했다. 하지만 발레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는 3개월 만에 발끝으로 서는 데 성공한다. 발레를 배우는 보통 아이들이 성공하는 데 1년이 걸리는 동작을 단 3개월 만에 성공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발레 기술의 이름을 외우기도 전에 스텝과 기술을 익힐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발레 역사상 최초로 백조를 맡은 흑인 발레리나

 

자신이 발레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미스티 코플랜드는 발레 아카데미에 입학하려 했지만 나이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너무 뚱뚱하고 근육질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한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가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발레 분야는 백인 중심의 보수적인 성향이어서 흑인이 수석 무용수가 되거나 주인공을 맡는 일이 거의 없었다. 미스티 코플랜드는 이러한 문화에 진입 장벽을 느꼈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재정적으로 지원해줄 후원자를 만난다. 하지만 어려운 집안 환경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후견인과 어머니의 양육권 분쟁이 일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미스티 코플랜드는 만 17세에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 입단하게 된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는 영국의 로열 발레단, 프랑스의 파리오페라극장 발레단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발레단으로, 최고의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입단할 수 있는 곳이다. 피나는 연습과 노력이 마침내 인정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미스티 코플랜드가 아메리칸발레시어터에서 생활하는 것도 순탄치 않았다. 유일한 흑인 무용수로서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식이 장애와 부상으로 고생하기도 했다. 타이츠와 토슈즈 등 발레 기본 용품에 흑인을 위한 색은 없었기 때문에 토슈즈를 자신의 피부색에 맞게 바꿔야만 했다. 공연을 할 때에는 얼굴을 밝은색으로 칠해야 했고, 코는 더욱 날렵하게 그려야 했다. 그때마다 미스티 코플랜드는 흑인이라는 것 자체가 걸림돌이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딜 가나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은 변함 이 없었고, 세상 사람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자신을 대하는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를 악물고 연습하고, 끊임없이 열정을 불태웠다. 이에 2007년, 그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솔로이스트로 발탁돼 흑인 발레리나로서 처음으로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을 맡아 극찬을 받는다. 그리고 2015년, 그는 마침내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수석 무용수로 뽑힌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 75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스티 코플랜드의 사진집 .

1999년, 아메리칸발레시어터 단원으로서 공연하는 미스티 코플랜드.

 

춤으로 메시지를 전하는 무용수

 

미스티 코플랜드는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수석 무용수가 된 이후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으며, 오바마 전 대통령의 운동 피트니스, 스포츠 및 영양위원회의 멤버로 지명되기도 했다. 또한 디즈니에서 제작한 <호두까기 인형과 4개의 왕국>에 출연하는 등 지금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발레를 하기 전 그는 매우 소심한 성격이었고 자기 표현에 서툰 사람이었다. 그에게 발레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발레가 가진 힘과 아름다움, 목소리가 그를 사로잡았는지도 모른다. 발레를 시작하기 전 그의 삶에는 힘, 아름다움, 목소리 그 어떤 것도 있지 않았지만,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춤으로써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미스티 코플랜드는 춤으로써 흑인 후배들도 발레리나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말해주고 있다. 자신이 이룬 가장 큰 성공은 다양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만큼, 발레라는 예술에서도 사회에서도,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누구나 성별, 인종, 계급에 대해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래야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NO COMMENTS

Leave a Reply